[재미있는 성경상식 40] 대장동 사기꾼의 잔꾀를 배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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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어떤 잔머리 대왕 같은 청지기가 주인이 맡긴 재산과 사업을 관리하면서 배임과 횡령을 일삼다가 쫓겨나게 되었다. 이제 해고되어 막노동을 하려니 힘에 부치고 구걸로 살려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 잔꾀를 써 공문서 조작을 통한 배임과 횡령을 크게 한 판 벌인다. 주인의 채무자들을 불러 계약서를 위조하는 것이었다. 기름 백 말을 빌어간 사람의 계약서에는 통 크게 잘라 50말로, 밀 백 석 빚진 사람의 계약서에도 뚝 떼어내서 80 석으로 축소 기재를 하게 했다. 남의 채권을 갖고 채무자들의 부채를 대폭 경감해 주어 도둑 시혜를 베풀었으니 나중에 은혜 갚으라 해서 되받아 먹으려는 기가 막힌 꼼수의 뇌물 공여였다. 이런 죽일 x이 있나…

그런데 이 소문이 주인의 귀에 들어갔을 때 주인이 한 말과 이에 대한 예수님의 코멘트가 우리를 시험 들게 하는 것 같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우리 한글 성경의 문구를 그대로 읽을 때, 엄청난 손해를 보고 속 터져 격노해야 할 주인이 이 교활한 매니저의 지혜를 ‘칭찬’했다는 점과 그 일을 놓고 우리 예수님이 그 주인의 말에 동조하는 것처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대장동 사건의 유모씨와 김모씨처럼 잔머리를 굴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비유에는 가리키는 포인트가 있다. 사용된 표현의 잔가지에 현혹되어 포인트를 흐려서는 안 된다.

(1) 확실하게 아닌 것… 절대로 여기 나오는 이 사기꾼처럼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정의하신다. “이 옳지 않은 청지기…”(8절). 이 사람은 좋은 청지기, 의로운 청지기,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다. 옳지 않은, 즉 불의(不義, ἀδικίας)한 사기꾼이다. 이렇게 눈속임이나 하면서 살면 안 된다.

(2) 이 나쁜 x에게 당한 주인이 ‘칭찬’했다는 표현의 함의는 ‘잘했다고 좋아하는 칭찬’이 아니라 ‘기가 막힌 사기의 꼼수에 대한 어이없는 감탄’이다. ‘정말 기발하다’는 어이없음의 한숨이다.

(3) 그렇다면 예수님은 뭘 본받으라는 것일까? 이렇게 신기한 잔머리 굴리는 잔꾀에 지지 않을 진정한 지혜를 역설의 대조로 제시하시는 것이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8b절). 이 세대의 자식들 같이 하면 안 된다. 빛의 자녀들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빛의 자녀들의 지혜가 이 세대 자식들의 잔꾀보다 못하면 슬프다. 지혜롭게 살자! 주님 말씀의 뜻이다.

진짜 지혜는 무엇인가? 사기를 같이 치는 채무자를 범죄 공모의 친구로 끌어들여 노후 보장을 하는 것은 악한 세상의 잔꾀다. 반면, 모순 가득한 세상의 불의한 구조 속에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좋은 목적으로 선용(善用)하여 영원을 보장하시는 하나님을 거룩한 친구로 만드는 것은 참 된 지혜다. 그래서 비유의 결론이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잔꾀 쓰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시하는 진정한 지혜를 갖자는 말씀이다. 이 비유의 요지는 대장동이 아니라 십자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