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게임의 여왕 (Queen to Play 2009 )

1242

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두달 넘게 계속된 셧다운은 처박아 두었던 보드 게임과 체스, 퍼즐등을 다시 부활시켰다.

상대를 마주하고 손과 머리를 쓰는 고전적인 게임은 우리의 관계도 변화시킨다.

그림같은 프랑스 코르시카 섬. ‘엘렌’은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난다. 고급 호텔의 객실을 청소하는 엘렌은 성실한 메이드. 부두 노동자인 남편과 고등학생 딸, 경제적으로 빡빡한 삶이지만 별로 불만은 없다. 어느 날 엘렌은 미국인 손님 부부가 체스 두는 걸 우연히 엿본다.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말들을 옮기며 서로 은밀하게 주고 받는 눈짓과  손 동작, 웃음과 여유로움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자신이 모르고 있던 다른 세상을 잠시 훔쳐 본 것 같다.  남편 생일에 엘렌은 전자 체스 셋트를 선물한다. 남편은 자신에게 왜 체스같은 걸 선물하는 지 어이가 없다. 남편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엘렌은 설명서를 읽으며 혼자서 체스를 배운다. 고등 교육은 못 받았지만 타고난 호기심과 재능을 가진 엘렌은 점점 체스에 빠져든다. 남편과 외식을 하는 식당에서 사각 무늬 테이블보 위에 빵 조각으로 체스를 두기도 하고,  체크 무늬 타일 바닥을 닦다가 체스 말이 되어 타일 위를 뛰어다닌다.

엘렌은 파트 타임으로 아내를 사별한 미국인 닥터 ‘크뢰거’의 집을 청소한다. 세상과 등지고 홀로 사는 괴팍한 크뢰거는 엘렌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한다. 서재를 청소하다가 체스판을 발견한 엘렌은 크뢰거에게 체스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대신 돈을 받지 않고 집을 청소하겠다고 제안한다.  크뢰거는 엘렌의 열성에 마지못해 승락하고 매주 화요일 오후에 체스 렛슨을 하게 된다. 남편과 딸, 청소만이 전부였던 엘렌은 체스를 통해  삶의 즐거움에 눈을 뜬다. 크뢰거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체스를 대하는 엘렌의 성품과 뛰어난 재능에 감탄한다. 엘렌과의 렛슨은 자신의 메마른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시간이 된다. 한편 남편은 변한 아내의 모습이 낯설고 불안하다. 엘렌의 뒤를 밟은 남편은 크뢰거의 서재에서 심각하게 체스를 두는 엘렌을 발견한다. 그리고 체크메이트를 외치며 활짝 웃는 아내를 본다. 눈이 부시게 빛나는 아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크뢰거는 이제 자신을 이기는 엘렌에게 추천서를 써주며 지역 대회에 내보낸다. 엘렌이 토너먼트에 나간다고 하자 남편은 반대한다. 남자들의 게임에 여자가 나갔다가 지면 창피하다. 사춘기 딸이 엄마 편을 든다. 가난을 창피해 하고 반항적이던 딸은 엄마가 체스를 통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열정과 도전 정신에 감동한다.

대회 날, 동네 사람들도 응원하러 간다.  어느 클럽에도 속하지 않고 등급 심사도 받아 본적이 없는 엘렌은 승승장구하고 마지막에는 대회장과 결승전에서 맞붙는다.  대회장을 이긴 엘렌은 섬마을의 스타가 되고 파리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출생지로만 알았던 코르시카의 풍광이 기가 막히다.  낙원같은 곳에서도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부자들과 그들의 안락을 위해 몸을 움직여 먹고 사는 서민들. 체스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엘렌은 고단한 일상에서 자기 내면의 소리와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으로 옮겼다. 환경은 바뀐 게 없지만 삶이 다양한 색깔로 펼쳐지고 기쁨이 찾아왔다. 평범하고 가난한  중년의 여자가 인생의 방향키를 돌렸다. 낯설고 두려워도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간다. 사는 게 힘든 요즈음 격려와 위로를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특히 엘렌의 조용하고 강인한 내면 연기가 돋보이고 여러  인물들의 조화가 유쾌하다. 촬영과 음악이 섬세하고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