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너를 사랑하고도 (The Wings of the Dove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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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오래 전 남편은  바쁘고 툭하면 출장이 잦았다. 애들 셋 돌보고 비지니스와 가사에 지친 나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때도 영화였다. 비디오나 디비디를 빌려보지만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 최고였다. 무슨 일이었는 지 그날 밤 나는 우울했다.  남편은 출장중이었고 밤 10시가 넘었다.  애들이 다 잠든 것을 확인하고 혼자 차를 몰고 영화관에 갔다. 표를 사고 들어가니 관객은 나 혼자였다. 한시간 반동안 드라마틱하고 매혹적인 인물들과 함께 신나게 20세기 초 유럽을 여행했다.  사는 게 무료할 때 여전히 찾아보고 그때마다 갈라진 감성을 만족시켜주는 그날 본 영화를 소개한다.

1910년 런던. 엄마가 죽자 ‘케이트’는 부유한 숙모의 도움을 받는다.  원래 상류사회 출신인 엄마는 가난한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아편 중독자 아버지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 숙모는 케이트를 돈과 지위를 갖춘 남자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숙모의 후원으로 사교계에 들어간 케이트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가십거리 기사를 쓰는 저널리스트 ‘머튼’과 몰래 약혼한 사이다. 하지만 가난한 남자를 숙모가 반대한다. 숙모는 미모의 조카를 부와 명성을 가진 ‘마크’공과 결혼시키려고 한다.  사랑도 상류사회의 안락함도 모두 갖고싶은 케이트는 딜레마에 빠진다. 케이트는 파티에서

아름답고 상냥한 미국인 ‘밀리’를 만난다. 밀리의 따뜻한 성품에 매료된 케이트는 진심으로 밀리가 좋아지고 두 여자는 친구가 된다. 케이트는 나중에 마크공에게서 밀리의 사정을 듣게 된다. 고아인 밀리가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고 병에 걸려 곧 죽게되는데 죽기 전 유럽을 여행하는 중이란다.

빚 때문에 재산과 토지가 넘어갈 지경인 마크는 케이트 대신 밀리와 결혼해서 그녀의 유산을 상속받을 계획이다. 파티에서 머튼을 본 밀리는 첫눈에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케이트는 집안 친구라고 거짓말을 한다. 밀리는 다음 여행지인 베니스로 떠나면서 케이트와 머튼을 초대한다. 케이트는 머튼에게 밀리를 유혹해서 그녀가 죽은 뒤 유산을 받고 둘이 결혼하자고 제안한다.

머튼은 반대하지만 케이트 곁에 있고 싶어서 그녀들을 따라간다. 베니스에서 셋이 함께 지내는 동안 머튼은 순수하고 맑은 밀리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감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뜻대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걸 지켜보면서 케이트는 불같은 질투심으로 괴로워한다. 케이트는 혼자서 런던으로 돌아간다. 밀리는 머튼과 케이트의 계획을 알게 되지만 두사람을 용서하고 베니스에서 세상을 떠난다. 밀리가 죽고 몇 달 후, 케이트는 런던에 돌아왔지만 케이트를 찾지 않은 머튼을 만난다. 밀리는 머튼에게 많은 재산을 남겼지만 머튼은 돈을 갖지 않겠다고 한다. 케이트가 머튼과 결혼을 원한다면 돈없이 해야한다. 밀리를 사랑한 머튼은 혼자서 베니스로 돌아간다.

‘헨리 제임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20세기 초 런던의 사교계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돈, 사랑, 상류사회의 위선과 철저히 계산된 결혼등이 세명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돈 때문에 죽어가는 친구를 이용하는 케이트가 사랑하는 남자를 내어주며 질투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사랑을 걸고 도박을 한 케이트는 결국 사랑을 잃는다. 세 배우의 앙상블이 훌륭하고 런던과 베니스의 촬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당시의 의상들도 우아하고 세련됬다. 주인공을 따라 갤러리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 “키스”와 “다나에”를 구경하는 건 덤이다. 199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 각색상, 촬영상,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