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김의 영화세상] 열여덟, 냉정과 열정 사이(Stok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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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박찬욱감독의 세련되고 디테일이 강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색과 음향이 정밀해서 움직이는 미술 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그의 헐리우드 데뷔작인

“Stoker”는 섬뜩하고 우아하다. ‘니콜 키드먼’의 농익은 연기와 창백한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 ‘미아 와시코우스카’ 그리고

“사이코”의 ‘노먼 베이츠’를 연상케 하는  ‘매튜 구드’의 앙상블이 뛰어나다.

‘인디아 스토커’는 조숙하고 총명한 소녀. 열여덟 생일에 그녀의 전부였던 아버지가 의문의 사고로 죽는다.  아버지와 사이가 소원했던 엄마 ‘이블린’은 정서 불안에 신경질적이다. 아버지 장례식날 낯선 남자 ‘찰리’가 아버지 동생이라며 찾아온다. 젊고 핸섬한 시동생 을 반기는 엄마와 달리 인디아는 냉랭하다. 찰리는 그동안 세계를 여행하고 다녔는데 형이 죽자 형수와 조카를 돌보기 위해 집에 머문다. 오래 일하던 늙은 가정부가 찰리와 언쟁을 벌인 후 사라진다. 찰리는 직접 요리도 하고 이블린과 드라이브도 하면서 친해진다.

외로웠던 이블린은 찰리에게 점점 빠져들고 인디아는 두사람을 몰래 지켜본다. 어느 날 고모할머니가 방문하는데 찰리를 보고 깜짝놀란다.

할머니는 마을의 호텔에 숙소를 잡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이블린에게 전화를 한다.  그때 찰리가 나타나서 할머니 목을 조른다. 그 시각 인디아는 집 지하실 냉동고에서 사라진 가정부의 시체를 발견한다. 인디아는 학교에서 남자애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하는데 그중 한명의 손등을 뾰족한 연필로 찍어 버린다. 동급생 ‘휩’이 지나가다 인디아를 구해준다.  그날 저녁 엄마와 삼촌의 진한 스킨쉽을 목격한 인디아는 밤거리로 나오는데 휩을 다시 만난다. 둘이서 숲길을 걷다가 육체적인 접촉이 일어나고 휩이 인디아를 범하려는 순간, 찰리가 나타나 휩의 목을 부러뜨린다. 인디아는 어쩔줄 몰라하지만

찰리는 침착하게 휩의 시체를 집의 정원으로 옮기고 땅에 묻는다. 인디아는 아버지 서재에서 그동안 자기에게 보낸 삼촌 찰리의 편지들을 발견한다.

찰리는 인디아의 생일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랑이 담긴 편지와 엽서를 보냈다. 그런데 보낸 곳의 주소가 항상 똑같다. 정신병원이다.

삼형제중 둘째인 찰리는 형을 무척 좋아했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자 형은 막내를 더 예뻐한다. 찰리는 모래 구덩이에 동생을 묻어 버린다. 어린 찰리는 정신 병원에 보내지고 세월이 흘러 인디아의 18세 생일에 퇴원한다. 아버지는 찰리가 딸을 위험에 빠트릴까 두려워 아파트와 생활비를 주고 뉴욕에서 살라고 부탁한다. 찰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형을 돌로 쳐서 죽인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인디아는 찰리를 용서하고 둘 사이는 회복되는 듯 보인다. 소외감을 느낀 이블린이 딸에게 심한 말을 하자 찰리가 이블린의 목을 조른다. 인디아는 아버지의 사냥 총으로 찰리를 쏘아 엄마를 구한다. 찰리의 시체를 뒷마당에 묻고 찰리의 차를 타고 뉴욕으로 향한다.

사진첩같은 섬세한 색감의 촬영이 소름끼치도록 아름답다. 구두, 운동화, 거미, 피아노등의 소품이 각자의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18살 인디아가 질투와 폭력, 욕망과 증오, 복수같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자각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딸의 냉정함에 상처받는 불안정하고 연약한 엄마이다가 시동생을 유혹하는 요부로 시시각각 변하는 이블린과 미소년의 외모에 분노와 광기를 숨기고 미소짓는 찰리의 조화가 서늘하다.  특히 인디아와 찰리가 터질듯한 긴장감과 격정으로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씬은 압권이다.

박찬욱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과 아름다운 촬영이 돋보이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