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겟 아웃 (Get Out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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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기대하던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면 간혹 배가 고플 때도 상영 시간에 맞춰 극장에 간다. 먹는 것보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허기진 것도 잊어버린다.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지만 공포물은 취향이 아니다. 보고 나서 기분 좋았던 적이 한번도 없다. 이런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뜨린 놀랍고 참신하고 스릴과 서스펜스, 풍자와 웃음까지 갖춘 웰메이드 공포영화가 있다. 직접 각본을 쓴 흑인 감독 ‘조단 필’의 데뷔작인데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각본상을 수상하는 돌풍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한밤중 백인 중산층 동네에서 홀로 길을 찾던 흑인 청년이 스포츠카 를 탄 괴한에게 납치된다.

사진 작가인 ‘크리스’는 주말을 맞아 애인 ‘로즈’의 부모를 방문하기로 한다. 흑인인 크리스와 백인인 로즈는 5개월째 사귀는 중이다. 크리스는 로즈의 부모를 만날 일이 부담이 된다. 흑인 남자친구가 처음인 로즈는 자신의 부모는 진보적이고 오바마 지지자라면서 안심시킨다. 친구 ‘로드’는 크리스가 백인 여자와 사귀고 그녀 집에 가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가 없는 동안 기르던 개를 돌봐주기로 한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대저택에서 로즈의 부모는 크리스를 반갑게 맞아준다. 신경외과 의사인 아버지 ‘딘’과 최면요법사인 어머니 ‘미시’는  세련된 매너로 딸의 애인을 대하지만 크리스는 왠지

불편하다. 넓은 저택에는 흑인 일꾼인 ‘월터’와 ‘조지아나’가 바깥과 집안 일은 도맡아 한다.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예의바른 그들의 태도와 말투도 석연치 않다. 로즈의 남동생 ‘제레미’가 집에 오자 로즈의 집에서 마을 주민들을 초청한 연례 행사 파티가 열린다.

크리스는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백인인 손님들은 모두 크리스에게 관심을 보인다. 손님들 중에서 자기 또래의 흑인 청년

‘안드레’를 발견한 크리스가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그의 태도가 괴이하다. 그는 어머니뻘 되는 백인 여자와 결혼했다. 사진을 찍으며 플래시가 터지자 갑자기 안드레가 크리스에게 여기서 나가라며 소리지르고 소란이 일어난다. 딘이 안드레를 데려가서 안정시키고 파티는 계속된다. 크리스는 도중에 로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경험한 이상한 일들을 보고한다. 그 사이 딘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크리스의 사진으로 사일런트 경매를 진행하는데 시력을 잃은 화랑 주인이 거액을 내고 크리스를 산다.

크리스는 로즈에게 떠나자고 설득하고 짐을 싸다가 로즈가 숨겨 둔 박스에서 사진들을 발견한다. 로즈와 숱한 흑인 청년들이 찍은 사진들 중에 하인인 월터와 조지아나, 안드레도 있다. 그들 모두 로즈와 연인 사이로 시작했다가 결국 이 마을에 붙잡혀있는 셈이다.

크리스는 탈출하려다 미시의 최면으로 식구들에게 잡혀서 의자에 묵인다. 크리스는 죽은 로즈의 할아버지가 설명하는 비디오를 보면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로즈는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이용해 신체 건강한 흑인 남녀를 유혹해서 마을에 데려왔다.

노환이나 질병으로 육신이 죽어가는 백인 주민들은 돈을 내고 마음에 드는 젊은 흑인을 산다. 미시가 그들을 최면으로 옭아 매고 신경외과의인 딘과 제레미가 백인 환자의 뇌 일부를 흑인의 몸에 이식한다. 뇌수술을 받은 흑인은 자신의 몸속에서 의식은 있지만 ‘그저 바라보는 자’로 남고 이식받은 백인의 뇌에 지배당한 채 노예처럼 살게 된다. 시력을 잃은 화랑 주인은 젊고 재능있는 크리스의 몸을 빌려서 다시 세상을 볼 예정이다. 크리스는 묶여있는 소파 속의 솜으로 귀를 막아 최면에서 벗어나고 수술 직전 딘과 제레미를  죽이고 저택을 탈출한다. 로즈 할머니의 뇌를 이식한 조지아나와 할아버지의 뇌를 받은 월터, 장총으로 무장한 로즈가 막아서지만 위기의 순간, 핸드폰 플래시로 잠시 의식을 찾은 월터의 각성으로 겨우 살아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뛰어나고 미시가 크리스를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최면 장면,  타악기의 빠른 비트와 스와힐리어로 불안과 음산함을 극대화시킨 OST, 간결하고 서늘한 촬영,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독특하게 풀어 놓은 스토리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알고 보아도 여전히 재미있을 빼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