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결혼식이 끝나고(After the Wedding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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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올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고 8월에 개봉한 영화 “After the Wedding”은 덴마크 여류 감독 ‘수잔 비엘’의 2006년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연기파 배우 ‘줄리안 모어’와 ‘미셀 윌리엄스’가 탄탄한 연기를 펼친다.  멜로 드라마인데 스릴과 감동이 있다.

강인하고 고독한 느낌의 ‘매드 미켈슨’이 주연한 원작은 더 깊이있고 사색적이다.  2007년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이었던 오리지널을 소개한다.

‘야곱(매드 미켈슨)’은 인도 봄베이의 빈민가에서 고아원을 운영한다. 오랫동안 수많은 어린 고아들을 먹이고 가르치면서 헌신해왔다. 하지만 그가 기획했던 프로젝트들이 실패하면서 경영난에 부딪히고 고아원은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한다. 그때 한 부유한 기업가로부터 자금을 대줄테니 코펜하겐으로 와서 미팅을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야곱은 아이들 곁을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지만 고아원의 사활이 달려있다.  덴마크에 도착한 야곱은 공항 영접부터 호화로운 숙소까지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을 불러준 재력가 ‘요르겐’을 만난다. 요르겐은 빈손으로 시작해서 거대한 기업을 일구었다. 그는 처음 만난 야곱에게 친절하고 야곱은 구상중인 사업 계획들을 설명한다. 요르겐은 불쑥 야곱을 자기 딸 결혼식에 초대한다. 마지못해 참석한 결혼식에서 야곱은 옛 애인 ‘헬렌’과 재회한다. 젊은 시절 서로 사랑했던 야곱과 헬렌은 사소한 오해로 헤어졌고 20년이 흘렀다. 헬렌은 요르겐의 아내이고 그들의 딸인 스무살 ‘안나’가 시집을 간다.  결혼식을 지켜보던 야곱은 안나가 친딸이 아님에도 사랑으로 키워준 요르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  안나가 자신의 딸임을 깨닫는다. 딸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던 야곱은 충격과 분노로 헬렌을 비난하고 식장을 떠난다.

다음 날 요르겐은 야곱을 불러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고아원을 위해 4백만불의 재단을 설립할테니 야곱이 안나와 함께 대표를 맡으라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야곱이 덴마크에서 살아야 한다. 야곱은 제안을 거절한다. 고아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다. 특히 출생 때부터 돌본 8살짜리 남자아이 ‘프라모드’는 아들과 같다.

요르겐은 숨겼던 진실을 밝힌다. 그는 병으로 살 날이 겨우 몇달 뿐이다. 아내 헬렌과 딸 안나, 그리고 아직 어린 두 쌍둥이 아들을 믿고 맡길수 있는 사람은 야곱뿐이다. 자신이 죽은 뒤에 남겨질 가족들을 위해 요르겐은 야곱의 행방을 수소문해서 그를 덴마크로 부른 것이다. 야곱은 죽음을 앞둔 요르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결국 재단 설립 서류에 싸인을 하고 덴마크에 남기로 결정한다. 요르겐의 장례식이 끝나고 야곱은 인도에 간다. 재단의 지원금으로 새 학교 건물이 들어서는 중이다. 야곱은 아들같은 프라모드에게 자기를 따라 덴마크에 가겠냐고 묻는다. 어린 소년은 까만 눈을 빛내며 말한다.

“나는 친구들과 여기서 살래요. 보고 싶으면 나중에 만나러 오세요.”

덴마크 영화지만 등장인물들이 낯설지 않고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에 공감이 간다. 고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야곱은 자금 부족으로 좌절한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수성가한 요르겐은 인생 최고의 정점에서 다 놓고 떠나야한다. 병을 숨긴 채 야곱을 불러 가족을 부탁하고  슬퍼하는 아내와 딸을 위로하며 의연하던 그는, 왜 자기가 죽어야 하느냐며 울부짖는다. 아내의 옛 애인에게 가족과 재산을 모두 맡기는 게 어떤 심정일까. 어지러운 봄베이의 빈민가와 코펜하겐의 풍요롭고 이국적인 풍광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특별히 자주 클로즈업된 야곱의 눈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의 고뇌와 갈등을 섬세하세 표현한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딸, 죽음과 삶, 헌신과 책임들을 돌아보게 한다. 재미와 반전,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가 훌륭한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