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그대, 와인을 좋아하나요? (Sideway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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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와인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저녁마다 한잔씩 마신다. ‘피노 누아’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 더 그렇다.

‘마일즈’는 어제 저녁 시음회에서 마신 와인이 덜 깬 상태에서 눈을 떴다. 급하게 짐을 싸서 자신의 낡은 차에 친구 ‘잭’을 태우고 캘리포니아의 와인 농장으로 떠난다. 대학 때부터 절친인 잭은 한물간 배우다. 타고난 바람둥이로 중년을 넘긴 나이에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잭의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마일즈는 친구를 위해 와인과 골프를 즐기는 총각 파티 여행을 기획한다. 마일즈의 삶은 실패투성이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그는 2년전 이혼을 했다. 소설을 썼지만 출판사에서는 대답이 없다. 볼품없는 외모에 소심하고 돈도 없다. 우울증이 심해 상담을 받고 약도 복용하지만 답답한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마일즈의 유일한 낙은 와인이다. 복잡미묘한 와인의 맛과 향기와 색깔을 음미하면서 포도의 종류, 기후, 토양, 숙성 정도까지 정확히 알아맞히는 와인 애호가이자 전문가다. 잭은 모든 면에서 마일즈와 정반대다. 주체 못하는 본능으로 매끄러운 외모와 화술을 이용해서 여자들을  유혹한다. 포도원 마을에 도착한 저녁, 마일즈는 단골 식당에서 웨이트리스 마야와 재회한다. 이혼녀인 마야는 대학원 에서 원예학을 전공한다. 마야는 마일즈의 와인과 소설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잭은 와인 시음회에서 만난 활달한 스테파니와 데이트를 한다.  마일즈와 마야, 잭과 스테파니 커플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마일즈는 섬세하고 지적인 마야에게 마음이 끌린다. 마일즈는 출판사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고 실의에 빠진다.  잭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마일즈에게 호감을 가졌던 마야는 두남자를 싸잡아서 비난한다. 잭의 사랑 고백을 믿었던 스테파니는 오토바이 헬멧으로 잭의 얼굴을 작살낸다. 휴가를 마치고 잭은 무사히 결혼식을 치룬다. 마일즈는 마야의 전화 메세지를 받는다. 마일즈의 원고를 읽은 마야는 좋은 소설이라고 진심이 담긴 격려를 남긴다.

 대책없는 두 어른 남자의 일주일간의 좌충우돌 여행기다. 캘리포니아의 멋진 와이너리 풍경과 와인에 대한 쉽고도 깊이있는 해설은 뜻밖의 수확이다. 인생의 중간 지점에 선 마일즈의 몸부림과 좌절에 공감한다. 끌리는 여자앞에서 그저 와인 얘기만 해대는 수줍고 어리버리한 마일즈와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혈기 왕성한 잭의 조합은 환상이다. 마야가 피노 누아만 고집하는 마일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피노는 얇은 껍질의 섬세한 품종이라 ‘카베네’처럼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고, 더워도 추워도 안되고 지극한 정성과 인내로 돌보아야만 기가막힌 맛을 내게 된다고 대답한다. 피노의 특성으로 소심하고 불안정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다. 이 영화가 상영되고 그해 미국의 피노 누아의 판매량이 전년에 비해20%나 증가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와인때문에 입맛을 다시고 포복절도할 사건들과 재치있는 대사에 신나게 웃는다.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의 열연도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