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나를 야구장에 데리고 가줘요 (Moneyball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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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시카고가 난리도 아닙니다. 108년 만의 우승, 마침내 깨뜨린 염소의 저주 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피를 말리게 했던 경기 내용도 그렇게 극적일 수 없습니다. 컵스의 우승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꼴찌를 맴돌던 최하위 야구팀이, 스타 선수도 없이 루저들을 기용해서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실화가 있습니다. 이번 컵스의 우승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기적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야구팀 단장 ‘빌리 빈’은 2001년 포스트 시즌에서 그의 팀이 뉴욕 ‘양키스’에게 패하자 머리가 무겁습니다. 팀의 스타 플레이어 세 명이 높은 이적료를 지불하는 다른 메이저팀으로 곧 옮겨 가는데, 대체할 선수를 스카웃하기가 어렵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구단의 예산으로 2002년 팀을 재정비 하려니 도무지 방법이 없습니다.

‘빌리’는 선수 교섭을 위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즈’팀을 방문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데려 오려고 상대팀 단장을 설득하는 중에, 단장이 웬 새파란 젊은 남자의 조언을 받는 걸 눈여겨 봅니다.

결국 점찍은 선수를 얻지 못한 빌리는 구단장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이 젊은이와 얘기를 나눕니다. 예일대를 갓 졸업한 ‘피터’는 야구는 해 본 적도 없습니다.

경제학 전공인 그는 몇십년 동안의 수많은 야구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조사합니다. 그리고 저평가된 선수들 중에 어떤 조합으로 팀을 짜야 이길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피터의 이론은 노련한 스카우터들이 선수를 영입할 때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관점과 전혀 다릅니다. 오직 각 선수들의 게임 내용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거기서 나오는 숫자로 선수를 택합니다. 빌리는 이 혁신적인 이론에 매료됩니다. 당장 피터를 부단장으로 고용해서 구단으로 데려옵니다.

빌리는 고교 야구의 스타였습니다. 장학금과 함께 명문대 진학을 앞두고 프로 야구계의 스카웃 제의를  받습니다. 거액의 수표와 함께 스카우터의 현란한 찬사를 듣고 메이저 리그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경기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고 선수 생활을 포기합니다. 대신 구단장으로 일하지만 과거의 실패와 대한 쓴뿌리가 항상 가슴에 남아 괴롭습니다. 빌리는 피터에게 과거 자신의 기록을 보여주고 이런 선수라면 스카웃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피터는 아니라고 솔직하게 답합니다. 결국 스카우터들이 잘못된 판단을 한 것입니다. 빌리는 대학에 진학을 했어야 했습니다.

빌리는  돌아오자마자 피터의 이론을 밀어부칩니다. 당연히 팀내 노장 스탭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힙니다. 필드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햇병아리의 말도 안되는 논리에 기가막힐 뿐입니다. 그래도 빌리는 피터의 조언대로 선수들을 모읍니다.

투구 폼이 우스꽝스럽거나 사생활이 문란하거나 부상 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 등으로 구단들로부터 외면 당한 선수들을 차례로 스카웃합니다. 선수들은 빌리가 제시한 낮은 연봉에도 감지덕지하고 계약합니다.

하지만 고집불통 감독 ‘아트’는 꿈쩍도 않습니다. 그는 새로 들어온 선수들을 시합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2002년 시즌 초반 경기에서 ‘애슬레틱스’팀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합니다. 여론은 빌리가 채택한 이론이 실패작이라고 비난하고 심지어 구단주까지 불만을 표시합니다. 빌리는 구단주를 설득하고 선수들을 독려하면서 자신에 대해 반기를 드는 감독 ‘아트’와 힘겨운 싸움을 합니다. 자신이 영입한 선수들을 필드에 내보내기 위해 팀내 오래된 스타 플레이어를 방출하는 극약 처방까지 합니다. 아트는 할 수없이 새로운 선수들을 뛰게 합니다.

다른 팀에서 버림받은 찬밥 선수들로 구성된 최하위 ‘애슬레틱스’팀은 게임을 해갈수록 서서히 기록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시합에서 계속 승리하더니 결국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20회 연속 승리라는 기록을 달성합니다. 캔자스시티 ‘로얄’팀과의 20회 경기에서 마지막 홈런으로 승리를 안겨준 주인공은 빌리가 뽑은 선수였습니다.

거침없던 ‘애슬레틱스’의 행보는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발목을 잡힙니다.

빌리는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역대 최고의 연봉으로 단장 제의를 받지만 ‘애슬레틱스’에 남습니다.

 

깊이있고 흥미롭고 감동적인, 야구보다는 비지니스, 직관과 경험이 아닌 숫자와 확률 통계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한 인간의 위대한 승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건처럼 선수들을 사고 파는 협상이 이루어지는 단장의 사무실과

회의장, 컴퓨터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피터의 방 등이 경기장보다 더 많이 보입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관객도 영화 속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빌리가 모집한 선수들은 저마다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선수로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팀으로 합쳐지니 스무번을 연속 이기는 기적을 만듭니다.

‘레드삭스’의 제의에 고민하는 빌리에게 피터는 한 선수의 경기 장면을 보여줍니다. 뚱뚱한 그 선수는 공을 치고 1루로 달려갑니다. 2루를 향해 달리다가 자신이 없는지 다시 1루로 황급히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가 친 공은 홈런이었습니다. 자기 편 선수와 상대 편 선수가 홈런이라고 알려주자 믿기지않은 듯 다시 홈을 향해 달려갑니다. 둔하고 느렸던 그래서 자신이 없었던 그는 홈런을 치고도 겁을 먹은 것입니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세상의 편견이나 열등감 때문에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기죽어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같아서 였습니다. 담배를 씹으며 침을 뱉어대는 거친 노장들과 천진한 얼굴로 숫자와 확률을 설명하는 땅딸막한 피터의 대비는 환상적입니다. 빌리역의 ‘브래드 피트’는 그가 미남임을 잊게 할 정도로 역에 녹아있습니다. 웃음과 재미, 스릴이 있는 개성 만점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