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 (Before Your Ey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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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터키.  ‘쿠르드’족들이 모여 사는 도시 ‘디야르바키르’ . 열 살의 ‘굴리스탄’과 일곱 살 ‘피랏’ 남매는 부모와 젖먹이 동생과 함께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삽니다. 아버지는 ‘쿠르드’족 언론의 저널리스트이고 엄마는 헌신적인 주부입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지만 행복합니다. 이모 ‘예크분’은 터키 경찰의 눈을 피해 반정부 활동을 하기 때문에 엄마를 걱정시킵니다.

‘굴리스탄’ 식구들은 주말에 차를 빌려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식구들은 하객들과 춤추고 노래하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매는 기분좋게 잠에 빠져듭니다. 깜깜한 밤길에 갑자기 경찰차가 길을 가로막습니다. 사복 차림의 남자가 아버지를 차 밖으로 불러내어 권총으로 머리를 쏘고 차 안의 엄마도 죽이고 그대로 사라집니다. 피범벅이 된 엄마의 품속에서 아기가 악을 쓰고 울어댑니다. 순식간에 눈 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어린 남매는 충격으로 울지도 못합니다.

고아가 된 아이들은 ‘예크분’이모와 살게 됩니다. ‘굴리스탄’은 이모가 일하는 동안 동생들을 돌봅니다. 칭얼대는 아기에게 테이프에 녹음된 엄마의 책읽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을 할아버지가 사는 스웨덴으로 데려가기 위해 비자를 받으러 나간 이모가 비밀 경찰에 체포됩니다.  곧 돌아온다던 이모는 소식이 없고 먹을 것도 떨어집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의 가구를 헐값에 팔아서 아기의  우유를 사고 빵도 삽니다. 며칠 만에 돈이 바닥나고 이제는 내다 팔 물건도 없습니다. 방세가 밀리고 수도와 전기도 끊깁니다. 아기가 열이 나고 아파도 약을 살수 없습니다. 밤새 울고 보채던 아기는 다음 날 아침  움직이지 않습니다. ‘굴리스탄’은 시장 거리에서 만난 눈먼 할아버지와 손녀딸 ‘질랄’의 도움으로 죽은 동생을  묻습니다.

아파트에서 쫒겨난 ‘굴리스탄’과 ‘피랏’은 길거리로 내몰립니다. 터키 경찰에게 부모를 잃고 장님인 할아버지와 남동생을 책임지는 또래의 소녀 ‘질랄’은 리어카 행상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굴리스탄’은 ‘질랄’의 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그들과 함께 노숙을 합니다. 어린 ‘피랏’은 부모없는 쿠르드족 십대 소년들과 어울리면서 도둑질을 배웁니다.

‘굴리스탄’은 몸을 파는 쿠르드 미혼모 ‘딜란’을 알게 됩니다.  ‘굴리스탄’은 ‘딜란’의 명함을 나누어 주고 돈을 받습니다. 어느 날 ‘딜란’의 손님 중에 부모를 죽인 터키 비밀 경찰 ‘누리’를 발견합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입니다. ‘굴리스탄’은 ‘딜란’을 따라 ‘누리’의 집에 들어가 그의 제복입은 사진과 권총을 훔칩니다.

‘누리’는 자신의 직업을 숨긴 채 성실한 가장, 친절한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굴리스탄’과 ‘피랏’은 쿠르드 소년들의 도움을 받아서 복수를 시행합니다. ‘누리’의 사진과 함께 정체를 밝힌 전단지를 찍어서 ‘누리’의 아파트와 동네 전체에 뿌립니다. 길거리 행상에 사용하던 확성기를 통해 ‘누리’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합니다. 존경받는 시민에서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으로 몰락한 ‘누리’는  적대적인 사람들의 시선 속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남매는 ‘피랏’이 따르는 형들과 함께 ‘이스탄불’로 가는 밴에 몸을 싣습니다. 형들이 대도시로 나가면 벌이가 훨씬 좋다고 했습니다. ‘굴리스탄’은 동생의 손을 꼭 쥐고 차창 밖을 내다봅니다. 흙먼지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닙니다. ‘피랏’은 누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듭니다.

겨우 열 살, 일곱 살인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은 폭력과 결핍, 무관심과 굶주림으로 목이 꽉 메일 정도로 잔인하고 슬픕니다. 터키와 쿠르드족의 오랜 불화는 긴 역사와 인근 국가들간의 이해타산까지 겹쳐 복잡하지만 영화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어린 남매, 거기다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젖먹이.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우리에게 묻습니다. 아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살고있는 차갑고 비정한 세상이 진저리치게 느껴집니다. 아기가 열이 나고 아프자 ‘피랏’은 온 힘을 다해 달려서 번화가 약국을 찾아갑니다. 아기의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받았는데 가져간 돈이 모자랍니다. 약사는 사정하는 일곱 살 짜리 아이에게 돈을 더 가져오라며 약병을 뺏습니다. 아무리 영화지만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비단 터키 뿐이겠습니까. 삶의 모든 현장에서 지금도 날마다 벌어지는 일입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지 생각하면 자식을 둔 부모로서 두려움과 연민이 몰려듭니다. 전문 배우가 아닌 아이들의 천진하고 솔직한 연기가 뛰어나고 음악과 촬영이 서늘하게 아름답습니다. 트럼프 통치하의 미국에서 한번쯤 보아야 할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