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사무라이 (Le Samourai : 1967)

2014

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작년에 ‘알랭 들롱’이 ‘파리 마치’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올해로 84세,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있단다. 중학생때 명보 극장에서 ‘태양은 가득히’를 본 이후, 들롱은 평생 나의 우상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삶이 불행했고 늘 진정한 사랑에 목말랐다고 고백한다. 그가 고독한 킬러로 나오는 불후의 명작을 소개한다.

 어둡고 좁은 방. 정면으로 보이는 두개의 길쭉한 창문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온다. 방 구석에 침대가 있고 한 사내가 누워있다. 사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가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어둠 속을  헤집고 올라간다. 사내는 침대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한다. 정확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수트와 트렌치 코트, 중절모를  갖추고 복잡한 파리의 거리로 나간다. ‘제프 코스텔로’, 32살의 독신. 전문 킬러인 그는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인다. 혼자서 일하는 제프에게 식구라고는 그가 기르는 새 한마리 뿐이다. 그는 길거리의 차를 훔쳐서 도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정비소로 간다. 제프가 차에서 내리자 늙은 정비공이 나와서 차의 번호판을 바꾸고 권총을 건넨다. 제프는 돈을 주고 차를 몰고 떠난다. 새로운 임무를 맡을 때마다 제프는 여자 친구인 ‘제인’을 방문한다. 알리바이를 위해 저녁 몇시부터 새벽 몇시까지 그녀의 아파트에 있었다고 미리 말을 맞춘다. 제인은 생활비를 대주는 부자 애인이 따로 있지만 제프를 사랑한다. 그를 위해 기꺼이 거짓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협조한다.

나이트클럽의 사장을 죽여달라는 지시를 받고 사장을 해치우고 나오는데, 클럽의 피아니스트 ‘발레리’와 마주친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서로를 응시하고 제프는 서둘러 현장을 떠난다.

파리 경찰이 사건을 수사한다. 클럽 종업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트렌치 코트와 중절모를 쓴 수십명의 용의자를 연행해서 한명씩 대질시킨다. 긴박한 순간, 결정적인 증인인 발레리가 제프가 범인이 아니라고 한다. 제인의 증언까지 합해서 완벽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자 경찰서장은 제프를 풀어준다. 하지만 제프가 범인이라고 믿는 서장은 그에게 미행을 붙인다. 제프는 임무 완수에 대한 보수를 받으러 나갔다가 고용주의 하수인에게 총을 맞는다. 이제 제프는 암흑가와 경찰, 양쪽에서 쫒기는 몸이 된다. 부상당한 채 도망친 제프는 클럽으로 발레리를 찾아간다. 그녀가 자기를 감싸준 이유를 알고 싶다. 왜 살인을 했냐고 묻는 그녀에게 자신의 직업을 말한다. 제프를 죽이려 했던 고용주는 거액의 선금과 함께 다시 임무를 맡긴다. 이번에는 발레리가 타겟이다.

제프는 제인을 찾아간다. 자신때문에 고생한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런 후 고용주의 거처에 잠입해서 그를 처단한다. 다시 클럽에 간 제프는 피아노를 치는 발레리 앞에 앉는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권총을 겨눈다. 그때 들이닥친 경찰들이 일제히  제프에게 총격을 가한다. 서장이 제프의 권총을 열어 보고 당황한다. 총알이 한 개도 없는 빈 총이다.

느와르영화의 고전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무살 대학생때 프랑스 문화원에서 이 영화를 봤다. 가차없이 비정한 엔딩때문에 끝나고 바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무라이보다 더  고독한 존재는 없다. 있다면 아마도 정글의 호랑이일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자신이 세운 규칙을 엄격히 지키며 킬러로서 고독한 삶을 사는 주인공과 딱 맞아 떨어진다. 들롱의 냉정하고 절제된 연기가 일품이다. 수려한 외모에 공허한 눈빛과 무표정이 더해져 영화 사상 가장 매혹적인 총잡이로 기억된다. 트렌치 코트에 중절모, 흰장갑의 소품이 세련되고, 연극 무대같은 오프닝씬과 회색과 푸른빛의 화면은 간결하고 우아하다. 시대를 초월해서 영화가 주는 아름다움 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