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신의 이름으로 (Spotlight : 2015)

1992

 

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2001년 7월,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에 새 편집장 ‘마티 배런’이 부임합니다. 마티는 직원들과의 첫 미팅에서, 지역 교구 ‘게오건’ 신부가 30년에 걸쳐 130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와, 보스턴의 추기경이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피해자측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심층 취재를 지시합니다. 이미, 한 여기자가 6개둴 동안 두번이나 다뤘던 기사지만, 후속 보도없이 유야무야 묻혀버린 사건입니다.

노련한 팀장 ‘로비’를 필두로 성실하고 열정적인 ‘마이크’, ‘사샤’, ‘매트’로 구성된 ‘스포트라이트’팀은, 피해자들을 수소문해서 한명씩 인터뷰하고 기록하면서 두렵고 거대한 사건의 실체를 향해 나아갑니다.

카톨릭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보스턴에서, 카톨릭 교회의 치부를 밝히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자 성스러운 교회 권위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습니다. 당연한 교회의 압력과 지역 공권력까지 가세한 조직적인 방해에도 팀원들은 묵묵히 조사를 계속합니다.

마이크가 만난 피해자측 변호사 ‘가라베디안’은, 게오건 신부 사건을 추기경이 이미 15년전에 알고있었다는 증거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카톨릭 신자인 판사가 자료를 일반에게 공개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마이크가 법원 열람실에서 찾아보니 그 서류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교회가 손을 쓴 것입니다. 보스턴 글로브는 법원에 게오건 신부 관련 서류를 열람하게 해달라는 청원을 합니다. 마이크는 가라베디안에게 없어진 자료를 다시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 사이 팀장 로비와 사샤는, 또 다른 신부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들 변호사인’ 매클리쉬’를 찾아갑니다. 매클리쉬는 그동안 80명의 성추행 피해자들을 대표했습니다. 대부분의 어린 피해자들은 수치심으로 일을 당하고도 즉시 도움을 청하지 않는데, 이런 범죄는 공소 시효가 3년이라, 아이들이 성년이 되어서 고소를 해도 기껏해야 교회 측으로부터 유감 표명과 몇천 불의 위로금으로 마무리되어 왔습니다. 성추행을 한 신부들은 교회의 묵인하에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그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지만, 그 곳에서도 성추행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스포트라이트’팀의  6개월에 걸친 집요한 추적과 조사 끝에 엄청난 사실들이 속속 들어납니다.

1962년 당시, 게오건 신부가 아이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알게 된 한 신부가 지역 주교에게 보고했지만, 오히려 입을 다물라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는 사이, 게오건 신부는 1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계속 성추행해왔습니다. 결국 카톨릭 교회 상부에서 사제들의 성추행을 알고도 수십 년간 방치해 둔 것입니다.

‘스포트라이트’팀은 오랫동안 성추행 신부들의 실태를 연구한 전직 사제의 보고를 통해, 이런 스캔들이 비단 보스턴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도시에서 발생해왔음을 알게 됩니다. 취재팀은 보스턴의 신부들 명부를 일일이 뒤져서, 보스턴에서만 수십년간 무려 87명의 신부들이 근무 당시 아동 성추행을 저지른 사실을 확인합니다. 2002년 새해 아침. 보스턴 글로브의 일요일판이 도시 전역에 배포됩니다. 신문 일면의 헤드라인 글자가 단호합니다.

“사제들의 성추행을 교회가 수십년간 허용하다.”

카톨릭 사제들이 오랫동안 저지른 성추행과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교회의 행태를 온 세상에 밝힌 보스턴 글로브 ‘스포라이트’팀의 실화입니다.

팀원들이 피해자, 가족, 가해자 신부, 변호사들을 인터뷰하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에, 놀라고 절망하고 분노하는 과정을 관객도 고스란히 동감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당시 신문사 사무실을 그대로 재현한 셋트, 실존 인물들도 감탄한 배우들의 진정성 어린 연기, (마이클 키튼,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등) 다양한 조연들의 조화가  뛰어난 수작입니다.

영화 엔딩에서 보스턴을 포함한 수많은 미국 도시들과 심지어 바티칸 시티,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등 유럽 국가들에서도 사제들의 성추행이 수십년간 행해져 왔음을 밝힙니다.

불편할 수 있는 소재인데, 취재 과정이 사실적이고 끈질기며, 피해자들의 증언에 함께 분노하고 좌절하고 긴장하느라 집중하게 됩니다. 카톨릭 신자인 기자들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느끼는 신앙에 대한 회의와 실망에 공감이 갑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알콜이나 마약 중독,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자극적 기사나 편파 보도가 판을 치는 요즘, 진정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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