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음식남녀(Eat, Drink, Man,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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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계속되는 자택 격리는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 직장에 출근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샤핑도 하던 일상들을 금지당한 지금,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과 나누는 것은 이 힘든 시기를 견디는데 위로와 기쁨을 주는 최고의 처방이 될수 있겠다. 힐링과 웃음, 식욕을 되찾아주는 뛰어난 영화를 소개한다.

일요일.  타이페이. 오래된 가정집. 추선생은 노련한 솜씨와 예술가적 현란함으로 온갖 종류의 식재료를 다듬고, 썰고, 삶고, 튀겨서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산해진미를 준비한다.  대만 최고의 셰프인 추선생은 오래 전에 아내를 사별하고 개성 강한 아름다운 세딸들과 산다. 실연의 아픔을 가진  20대 후반의 교사 첫째 ‘지아 젠’. 능력있는 항공사 간부이며 유부남과의 연애에도 당당한 둘째 ‘지아 치엔’. 웬디스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스무 살 막내 ‘지아 닝’.  권위적이고 무뚝뚝한 아버지는 갈수록 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버지와 딸들, 또 딸들 사이에도 진정한 대화가 어려운 추선생 집에서는 일요일 저녁마다 아버지가 준비한  최고의 요리를 먹는 것이 가족임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추선생의 요리는 국빈급이나 맛볼 수 있는 일류지만 딸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고 고역이다.

“나, 할 얘기가 있어요.”  이 말을 시작함으로 딸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아버지에게 통보한다.  추선생 식구들에게 저녁 식탁은 하고싶은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둘째는 새아파트로 나가 살겠다고 하고 막내는 임신을 해서 남자 친구와 동거하겠다고 선포하고, 큰 딸도 갑작스럽게 결혼을 발표한다.

오랜 세월 홀로 키운 딸들은 이미 각자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아무런 힘도 없다.

셰프로서 미각까지 상실한 늙은 추선생에게 삶은 이미 스파이스가 빠져버린, 맛을 못 느끼는 음식이다. 병원에서 검사 받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놀란 둘째 지아 치엔은 독립을 포기하고 아버지 곁에 남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딸들의 뒤통수를 친다. 그동안 아버지를 호시탐탐 노리던 옆집 금영 여사의 딸이자 자신들의 친구인 ‘진 롱’과 결혼을 한다는 것.

“와호장룡”, “Brokeback Mountain”, “색 계”, “ Life of Pi”를 만든 대만 출신 ‘앙 리’감독의 1994년작.

화면에 나오는 추선생의 각종 요리는 준비 과정부터 완성까지 장인의 걸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눈이 호강하고 식욕이 난다. 영화는 삶의 복잡미묘함, 부모 자식간의 세대차, 가족간의 대화 단절, 갈등과 극복등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얼굴을 보여준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 못하고 대신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최상의 요리를 정성껏 만드는 추선생에게서 우리의 아버지들과 남편들을 생각한다. 스토리, 촬영,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뛰어나다.

“딸들을 키우는 건 요리하는 거와 같아. 요리를 정성껏 끝마치면 식욕이 없어지는 것처럼.”

추선생의 한 마디가 오랫동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