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이 또한 지나가리라 (A Long Way Dow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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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왠지 우울하고 위로가 필요할 때 영화를 보고 기분전환을 한다. ‘마틴’은 한때 모든 것을 가졌었다. 영국 텔레비전의 인기있는 쇼진행자로 부와 명성을 누리다가 미성년자와의 부적절한 스캔들이 터지자 순식간에 몰락한다. 방송국에서 해고되고 이혼당하고 감옥까지 다녀왔다. 수치스러운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삶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12월 31일 밤, 런던의 고층빌딩 옥상에 올라간다. 막상 뛰어내리려니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때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도 자살을 하려고 올라왔다.

또 요란하게 차려입은 십대 소녀가 울면서 달려온다. 뛰어내리려는 것을 마틴과 여자가 엉겁결에 붙잡는다. 죽겠다고 난리치는 소녀와 실갱이를 하는 동안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그도 자살을 하려고 올라왔다. 같은 목적을 가진 네명의 이방인들은 서로를 소개한다. 중년여자 ‘모린’은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평생 보살폈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없다. 유명 정치가의 딸인 ‘제시’는 2년전 언니가 실종되고 속물적인 부모에게 반항해서 가출했다. 젊은 남자 ‘제이제이’는 그냥 살고싶지 않다. 뇌종양이다.

 네명은 옥상에서의 거사를 접고 내려오지만 제시가 약을 먹고 정신을 잃자 다같이 병원에 간다. 병원에서 새해를 맞은 사람들은  깨어난 제시의 제안으로 밸런타인데이까지 자살을 유보하는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정치가의 딸과 추락한 유명 방송인이 포함된 자살그룹 얘기는 미디어의 표적이 된다. 네사람은 언론의 추적을 피해 마틴의 주도로 휴양지로 피신한다. 각자 짊어졌던 어둡고 불행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즐겁고 평화로운 시간을 가진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바다에서 놀고 웃고 떠들면서 깊은 유대감으로 뭉친다.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본 모린과 가족여행같은 분위기에 신나는 제시, 손상된 명성으로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는 마틴,  밴드에서 음악을 하다가 포기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제이제이.

이 기묘한 조합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위로를 받는다. 마지막날,

제이제이는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한 것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그를 걱정한 마틴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휴가에서 돌아온 후 네사람은 서먹하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모린의 아들이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병원에 실려가자 마틴과 제시가 한걸음에 달려온다. 하지만 제이제이가 사라졌다. 그날이 마침 밸런타인데이다.

마틴은 모두를 처음  만났던 빌딩 옥상으로 간다.  제이제이가 옥상 난간 끝에 서있다. 마틴은 제이제이를 설득하고, 모린과 제시도 간청한다. 마틴은 자신들이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제 모두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다시 한해의 마지막 날 저녁, 네사람은 각자가 있는 곳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새해 인사를 나눈다.

 자살이라는 주제를 무겁지 않고 희화적으로 묘사했다. 삶을 끝내고 싶은 이유가 전혀 다른 네명의 조합이 기발하고 웃기다. 춥고 비내리는 런던은 낭만적이지만 우울하게 보인다. 배우들의 조화가 뛰어나다. 특히 절망속에서도 자신보다 불안정한 세사람을 보호하는 마틴역의 007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보면서 웃고 가끔씩 눈물도 나는데 해피 엔딩에 마음이 놓인다. 밴드 멤버였던 제이제이가 있어서인지 음악도 좋다. 기타, 피아노 그리고 호소력있는 보컬까지 감성을 울리는 곡들이 화면 가득 흐른다.  혹독했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