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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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고전은 시간을 초월한다. 어린 시절 감명깊게 읽은 책들은 평생을 간다. 내성적이고 몽상가이던 나에게 최고의 친구는 책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루이자 메이 올코트’의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을 읽었다. 당시 계몽사에서 펴낸 세계 명작 50선 중의 하나였는데, 왠지 심심한 제목때문에 나중까지 미뤄둔 책이었다.

몇번이나 되읽으며, ‘조’가 ‘로리’의 사랑을 거절하는 대목에서는 항상 안타깝고 속상했다. ‘멜빈 르로이’ 감독의 1949년작 흑백 영화는 ‘준 앨리슨’이 ‘조’역을 기막히게 했고 ‘사이코’의 ‘자넷 리’, 어렸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는 나의 최애 힐링 작품중 하나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때 집에 온 딸과 일곱번째 리메이크 작품을 보았다. 1994년작도 십대인 딸과 극장에서 봤는데, ‘위노나 라이더’의 조가 ‘크리스천 베일’의 로리를 거절하는 장면에서는 영화관에 있던 십대 소녀들이 말도 안돼, 도대체 왜 하며  신음하던 소리를 듣고 웃음이 나왔었다. 재능있는 여류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잘 짜인 각본과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이 돋보이는 신작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전개로 원작을 모르는 관객은 자칫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  ‘시어샤 로난’의 조는 단연 돋보이고 , 은근히 주관적이고 사랑에 올인하는 새로운 에이미를 연기한 ‘플로렌스 퓨’와 매혹적인 로리의 ‘티모데 살라메’의 조화가 매끄럽다.

남북전쟁 막바지의 미 동부 콩코드 마을.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마치’집안의 네 딸들은 크리스마스에 자신들의 음식을 가난한 이웃

에게 양보한다. 예쁘고 상냥한 큰딸 메그, 작가 지망생의 자유롭고

할달한 조, 소심하고 피아노를 잘 치는 베스, 미술에 재능있고 화려한 결혼을 꿈꾸는 에이미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마치네 집 길 건너 대저택에 미스터 로렌스와 손자 로리가 이사온다. 고독하고 순수한 청년 로리는 정열적인 조에게 빠져들고 둘은 친구가 된다.

베스는 병든 아기를 돌보다 성홍렬에 걸려 죽다 살아나고 부유한 숙모의 말동무가 되어주던 조는 숙모가 유럽 여행을 갈 때 데려가겠다는 약속에 희망에 부푼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돌아오고 메그는 로리의 가정교사인 ‘존 부룩’과 결혼한다. 숙모는 선머슴같은 조 대신에 고분고분한 에이미를 유럽 여행에 동반한다. 실망한 조에게 로리가 사랑을 고백하지만 결혼에 관심이 없는 조는 거절한다. 실연한 로리는 할아버지와 여행을 떠나고, 조는 뉴욕에 서 글을 쓰고 가정 교사를 하면서 작가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 출판사의 취향에 맞는 글을 쓰며 갈등하던 조는 독일인 교수 ‘베어’를 만난다. 베스의 건강이 악화되자 고향으로 돌아 온 조는 동생과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베스가 죽고 슬픔에 빠진 조는 베스의 소원대로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파리에서 로리와 재회한 에이미는 방종한 생활을 하는 로리를 바로 잡는다. 에이미가 자신을 사랑해 온 것을 알게된 로리는 에이미와 결혼한다. 로리 부부가 고향으로 돌아 온 날, 베어 교수가 마치네 집을 방문하고 조와 베어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네자매의 이야기를 쓴 조의 소설이 출판되고 숙모의 유산을 받은 조는 숙모의 저택에 학교를 세운다.

촬영이 유려하고 의상, 무대, 소품들이 고풍스럽고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영화 음악의 거장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도 아름답다. 개봉 날 극장 안은 20대 뿐 아니라 나이 든 중년, 노년 여성관객들이 많았다. 30이 넘은 딸과 나도 소녀같은 기분으로 즐겁게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