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핵쏘 리지 (Hacksaw Ridg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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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대통령 선거 결과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조국의 소식은 갈수록 태산입니다. 결실과 감사의 계절인 가을에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때는 정공법으로 밀고 나가는 게 어떨까요.

믿음, 용기, 헌신, 사랑, 희망같은 인간의 기본 덕목으로 돌아가서 우리를 격려하고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입니다. 일주일 전에 개봉해서 한창 상영중인 영화 한편 소개합니다.

 

‘데스몬드’ 와 ‘할’ 형제는 버지니아 시골 ‘린치버그’마을에서 신앙심깊은 어머니, 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와 함께 삽니다. 어린시절 친구들을 전쟁에서 잃고 혼자 살아 남은 아버지는, 죄책감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매일 술을 마시며 화를 잘 내고 때때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사이좋은 형제였던 십대 때, 데스몬드는 형과 장난치다가 벽돌로 형의 머리를 치고 형은 의식을 잃습니다. 형이 깨어나지 못할까 봐 충격과 두려움으로 괴로워하던 데스몬드는 십계명 중 특히 여섯번째, ‘살인하지 말라’를 평생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청년이 된 데스몬드는 시내에 나갔다가, 자동차 바퀴에 다리가 낀 남자를 병원에 옮겨주고 거기서 아름다운 간호사 ‘도로시’를 만납니다. 또 병원에서 헌혈을 하면서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에 관심을 갖습니다. 데스몬드는 도로시와 사랑에 빠지고 데이트를 합니다.

어느 날 할이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입대를 결정하고, 전쟁의 참상을 잘 아는 아버지는  좌절합니다. 데스몬드도 형을 따라 위생병으로 자원합니다. 독실한 제7일 안식교 신자인 데스몬드는 모든 훈련을 받고 명령을 따르지만, 자신의 신앙과 양심에 따라 무기소지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conscientious objector)입니다.

훈련소에 입대해서 각 지역에서 모인 동료들과 훈련을 받지만 정작 사격 훈련을 거부하자 일대 파란이 일어납니다. 베테랑 하사 ‘하웰’은 말라깽이에 순진한 시골뜨기 데스몬드가 온갖 압력과 체벌에도 굴하지 않고 총을 거부하자 골치가 아픕니다. 상관 ‘글로버’ 대위와 동료들까지 합세해서 데스몬드를 겁쟁이라고 비난하고, 구타와  왕따를 시키며 스스로 군을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데스몬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묵묵히 견디면서 위생병으로 전쟁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결국 상부에까지 보고가 되고, 도로시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날, 데스몬드는 외출이 금지되고 재판에 회부됩니다. 명령불복종죄를 인정하면, 처벌받지 않고 풀려나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다는 회유에도 움직이지 않자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합니다.

아들의 신념을 알게 된 아버지는 옛 전쟁 동료인  장군을 찾아가서 아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여기서는 무기 소지 거부)가 미 헌법에 보장된 것임을 확인시키고 데스몬드는 극적으로 군에 복귀합니다.

도로시와 결혼식을 올린 데스몬드는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됩니다.

난공불락의 일본군 기지가 있는 활톱 모양의 절벽 ‘핵쏘 리지’에 도착한 대원들은 밧줄을 타고 절벽을 오릅니다.

고지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군의 집중 포격이 시작되고 대원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집니다. 살점이 뜯기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내장이 뭉텅뭉텅 쏟아지는 아비규환 속에서, 데스몬드는 부상자를 지혈하고 몰핀을 놓고 들것으로 옮겨서 절벽 입구로 실어나릅니다. 단 몇시간 만에 아군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자 부대는 일단 철수합니다. 남은 장병들은

후퇴하느라 절벽 아래로 내려갑니다.

데스몬드는 혼자 남아서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시체들 사이에서 아직도 숨이 붙어있는 동료들을 찾아다닙니다. 부상자들의 상처를 처치하고  몸을 밧줄로 동여 맨 후, 절벽 밑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밤이 지납니다. 이틑날 데스몬드는 부상당한 채 홀로 싸우는 하웰 하사를 발견하고 그를 구해냅니다.

본부에서는 부상병들이 계속 실려오는 것에 놀랍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데스몬드 혼자 전장터에 남아 부상병들을 구조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부상당한 일본군까지 포함해서 데스몬드가 구한 목숨이75명이 됩니다.

전열을 가다듬은 부대는 다시 핵쏘 리지를 공격해서 점령합니다.

토요일이었음에도(데스몬드는 제7안식교 신자) 부대원들의 간절한 바람대로 데스몬드는 그들과 합류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부상병들을 실어 나릅니다.

데스몬드는 미 역사상 무기없이 전쟁에 참가한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로 기록되고 무공훈장을 받습니다.

영화 말미에 실제 데스몬드의 모습과 그가 구해준 동료의 증언이 나옵니다. “주님 한명만 더 구하게 도우소서” 하며 지친 몸을 끌고 부상자를 찾아다니는 그의 모습이 오랫동안 남습니다.

전쟁의 실상이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화면은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음악은 비장하고 마음을 흔듭니다. 평범한 인간의 용기와 신념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