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Who You Think I Am(위험한 관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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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

우리가 사는 현재는 불가사의하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몇번의 클릭만 하면 내 친구의 친구들, 그 친구들의 친구들까지 주르르 엮여 알게된다.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온라인상에서 친구가 되고 사랑에도 빠진다. 생활이 편해지고 관계가 풍요로워져서 행복해야 맞는 건데, 사람들은 더 불안하고 고독하고 불행하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50대 초반 ‘클레어’는 남편이 딸같은 나이의 젊은 여자에게 빠져 20년 결혼 생활을 마감했다. 십대의 두 아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일찌감치 철이 들고, 그나마 위로를 주던 연하의 애인 ‘루도’는 자꾸 그녀를 피한다. 한때 찬란하게 빛나던 외모는 나이와 함께 시들고 남자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루도가 바람을 피우는 지 확인하기 위해 클레어는 루도의 룸메이트 ‘알렉스’의 온라인 계정에 접근한다.

24세 여성 ‘클라라’라는 가짜 신분을 만들고 사진 작가인 알렉스에게 친구 신청을 한다. 친구가 받아들여지자 클레어는 알렉스의 작품들을 칭찬하면서 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된다. 섬세한 예술가인 알렉스는 클레어의 깊이있고 지적인 대화에 끌리고 결국 전화로 소통하게 된다. 클레어의 성숙한 목소리는 단숨에 알렉스를 끌어당기고 클레어 역시 알렉스에게 빠져든다. 클레어는 젊고 매력적인 24세여자의 사진을 자신이라고 속여서 올린다. 알렉스는 제3의 인물 클라라의 사진을 보면서 클레어와 사랑에 빠진다. 클레어는 알렉스와의 정열적인 사랑에 행복하고,  건조했던 그녀의 삶에 활력이 돈다. 만나자는 알렉스에게 매번 핑계를 대면서 피하다가 안 만나주면 끝내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만나기로 한 날, 클레어는 약속 장소에 나가 가까이에서 알렉스를 지켜본다. 알렉스가 군중속에서 두리번거리며 자신을(사진 속 클라라) 찾느라 실제 그녀를 보고도 지나치자 쓰라린 절망과 고통을 느낀다. 관계를 끝내야 할 때임을 깨달은 클레어는 결혼하고 멀리 떠난다는 말로 이별을 고한다. 이별후 괴로운 나날속에서 알렉스의 근황이 궁금했던 클레어는 옛애인 루도에게 연락하고, 알렉스가 자동차를 몰고 절벽아래로 떨어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물속으로 가라앉는 클레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클레어가 상담받으며 털어놓는 이야기들이 플래시백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빛과 어두움이 대비되는 촬영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마치 스릴러물을 보는 느낌이다.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한 음악도 좋다. 나이먹는 여자의 고독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집착과 갈망이 소셜미디어라는 도구를 만나 어떻게 변해가는 지 웃기고 슬프고 흥미롭다.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 클레어를 솔직하고 매혹적으로 연기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클레어의 황당한 고백을 묵묵히 들어주는 또 한명의 나이든 여자, ‘닥터 보망’의 연기도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치밀한 스토리와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잘 만든 프랑스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