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내 사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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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유전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 새로 개봉한 영화들을 보러 극장을 순례했다.

서른에 첫 애를 가진 엄마는  입덧이 심했다.  부엌도 없는 사글셋방에서 연탄 아궁이에 밥을 해 먹어야 했던 엄마는, 가뜩이나 불편한  발 때문에  살림사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엄마가  입덧을 유난스럽게 하는 통에 걱정이 많았다.

쪽 빠진 엄마가 안스러워, 출근하면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얼마간의 돈을 놓고 나가곤 했는데, 엄마는 그 돈으로  전부 영화를 보았다.

빈 속에 헛구역질을 해 대면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컴컴한 극장에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속이 가라앉았단다.  그 해 서울에서 개봉한 영화들은 거진 다 보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철없는 엄마였다.

 

그렇게 태어난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여섯살 때 였을거다. 국도극장에서 ‘노국공주’를 상영했다.

마침 시골에서 외할 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이 올라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는 한복을 차려입고  외가 식구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빠와 아이들은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는데,  그 날 만은 달랐다.

내 피에 흐르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엄마에게 반항을 하게 했다.

“엄마, 할머니랑 전부 어디가는 거야?”

“응…… 할머니가 아파서 주사맞으러 병원 가는거야.”

엄마는 미안한 표정으로 먹히지도 않을 거짓말을 했다.

혹시 영화 구경 간다고하면,  아이들이 따라간다고 떼쓸까 봐  둘러댄 것이다.

“나두 갈래. 얌전히 있을께.”

나는 여섯살 짜리로서 최대한 단호하게 말했다.

 

극장 입구에서 표 받는 아저씨가 연소자입장불가 라며 나를 막았다.

엄마는 민망한 표정으로 한번만 봐 달라고 부탁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계셨다. 어린 마음에도 나 때문에 벌어진 일에 책임감을 느꼈다.  아니 그것보다 극장까지 와서 영화를 못 볼까봐 애가 탔을 거다.

“아저씨,  제발 부탁드려요. 영화 보게 해주세요.”

나는 표 받는 아저씨 바지 자락을 붙잡고 울먹이며 애원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가슴이 콩콩 뛰는 것을 느꼈다.

내 몫으로 표를 사지않아 외삼촌 무릎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커다란 스크린에 총천연색  칼라로 펼쳐지는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사랑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원나라와 고려, 그리고 허장강씨가 분한 사악한 신돈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나를 그처럼 마음 아프게 했던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최은희와  김진규라는 두 걸출한 배우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후부터 엄마는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갔다.

신성일, 엄앵란의 영화를 보면서 남녀간의 사랑과 배신, 이별 등에 일찍 눈을 떴다.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  기찻길을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어린 마음에도 오랫동안 아프게 남아있었다.

제목도 촌스러운 ‘옥이 엄마’,  ‘월하의 공동묘지’, ‘떠날 때는 말없이’, ‘먼 데서 온 여자’ 부터 ‘애인’,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통속 멜로물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중 3 기말고사를 앞두고 명보극장에서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를 본 것은 결정적인 실수였다.  수려한 외모에 고독한 눈빛을 가진 젊은 ‘알랭 들롱’을 만났다.

작렬하는 태양과 청색의 바다,  돈많은 친구를 죽이고 그의 애인을 가로 채려던

불우한 주인공.  매력적인 배우와 아름다운 영상에 넋을 잃었다.

4일동안의 기말고사 내내, 시도때도 없이 영화 장면들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어렵게 시험을 치렀다.

최근에 여든을 넘긴 그의 모습을 유튜브로 보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래도 눈빛이 살아있는 할아버지다.

 

영화를 보면서 철이 들고 성숙해지고 인생을 경험했다.

영화 속에서 우리의 삶은, 동양이건 서양이건, 옛날이건 현재이건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은 기본이고 선과 악이 공존하며, 유혹과 장애물은 항상 앞을 가로 막는다.

영화속 인물들은 불평이 없다.  주인공도 조연도 악역도 모두 자기의 역할을 끝까지

수행한다.

여든 여섯인 엄마는 서울의 널싱홈에 계신다. 매년 엄마를 보러 서울에 나가지만 눈앞에서 천천히 사라져가는 엄마를 보는 것이 슬프고 아프다.

엄마가 좋아했던 영화 얘기를 들려줘도 눈이 빛나지 않는다.

이제는 늙어가는 것에 대한 영화를 볼때  힘들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내와 늙은 남편의 이야기인 ‘아무르’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널싱홈의 엄마를 생각했었다.

그래도 나에게 영화는 언제나 위로와 격려와 꿈과 희망을 준다.  그  옛날 엄마가 뱃속에 나를 갖고 영화관 순례를 했으니,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