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아버지의 꿈 (Everybody’s Famo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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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12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직도 보고싶다. 학교 졸업하고 바로 시집가서 한국을 떠나 살아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짧았다. 영화를 보다가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눈물을 쏟는다.  국적, 나이  상관없이 나에게 영화 속 모든 아버지는 그립고 애틋한 대상이다.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중년을 넘긴 ‘쟝’은 매일 밤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완성된 유리병을 검사하는 노동자이다. 성실한 가장인 그는 아내와 십대의 딸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작곡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틈만 나면 새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테이프에 녹음 한다. 쟝은 자신이 못이룬 꿈을 딸 ‘마르바’에게 걸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극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마르바는 뚱뚱하고 평범한 얼굴이다. 주말마다 여러  노래 경연대회에 나가보지만 열등한 외모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하고 번번이 떨어진다. 눈치있는 아내는 요령있게 딸을  대하지만 쟝은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하다가 딸에게 무시와  원망을 받을 뿐이다. 그래도 마르바의 재능을 철썩같이 믿는 쟝은 딸을 위해서 새로운 곡을 만든다. 쟝의 식구들은 텔레비젼에서 인기 가수 ‘데비’의 공연을 즐겨 본다. 현재 최고로 잘나가는 데비는 얼굴도 예쁘고 날씬하고 노래도 잘한다. 마르바는 데비를 동경하면서도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 업계 사람들과 잠자리를 했을 거라고 험담한다.

갑자기 쟝의 공장이 문을 닫는다. 충격과 분노로 어쩔줄 모르는 쟝은 식구들에게 비밀로 하고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선다. 절망속에서 친한 동료 ’윌리’와 함께 대책을 찾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쟝이 여느 때처럼 밖에서 시간을 때우고 돌아가는 길에 자동차가 고장난다. 차 보닛을 열고 정비소에 연락을 하려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여자가 도와준다. 능숙한 솜씨로 차의 부속을  손보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쟝은 깜짝 놀란다. 인기 가수 데비다. 쟝은 충동적으로 음료수에 수면제를 넣어 데비에게 건네고 잠이 든 그녀를 납치한다. 친구 윌리를 불러 데비의 몸값을 받아내자고 설득하고 그녀를 외딴 집에 가둔다. 착한 윌리는 마지못해 데비를 감시하지만 정성껏 그녀의 시중을 든다.

쟝은 데비의 매니저와 협상을 시작한다. 가수가 되려는 딸을 위해 데비의 몸값 대신 자신이 녹음한 테이프를 토대로 곡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데비의 납치 사건은 전국적인 뉴스가 되어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된다. 매니저는 쟝의 원곡을 편곡하여 데모용 테잎을 만들어 쟝에게 들려주고 쟝은 감격한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를  가수로 딸 마르바를 추천한다. 매니저는 이 엉뚱한 유괴범의 정체를 파악하지만 경찰에 알리지 않고 쟝에게 협력한다. 데비의 구조가 늦어질수록 데비의 앨범이 기록적으로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니저는 오히려 쟝에게 데비를 조금 더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대신 쟝의 소원대로 쟝의 곡을  마르바에게  녹음시킨다. 노래는 대박이 나고 무대에 서지 않는 얼굴없는 가수로 유명해진다.

한편 인기와 명성에 싸여 외로웠던 데비는 자신을 감시하는 친절한 윌리에게 사랑을 느낀다. 마르바가 처음으로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날, 쟝은 데비와 윌리가 함께 도망간것을 발견한다. 밖에는 방송국 카메라와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다.영악한 매니저가 마르바의 방송 출연에 맞춰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다. 어리숙한 쟝은 영문도 모른 채 매니저의 지시를 따른다. 리포터가 현장에서 쟝을 인터뷰하고 방송국에서는 마르바를 세워 아버지와 딸의 극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 자기를 위해 말도 안되는 모험을 감행한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한 마르바는 자신감을 회복하여 최고의 노래를 부르고 전국의 시청자들은 새로운 스타 탄생에 열광한다. 기발하고 웃기고 따뜻한 영화이다. 벨기에 서민들의 삶을 보면서 나라와 언어는달라도 사람 사는 건 어디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의 고단함,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 아버지의 고마움을 모르는 철없는 딸 , 외모 위주의 사회, 스타에 대한 동경, 시청률을 위한 인위적인 방송 보도.  한국과 미국도 다를 바 없다.

유괴범의 신분을 망각하고 매니저에게 딸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오디션을 부탁하는 쟝의 바보스러움에 가슴이 뭉클했다. 딸과 남편 사이에서 지혜롭게 처신하는 아내,  성공하고도 늘 외로웠던 데비, 의리있고 상냥한 윌리, 못난 오리도 백조로 바꾸는 꾀돌이 매니저, 그리고 마침내 외모 컴플렉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로 꿈을 이룬 뚱뚱한 마르바. 모든 등장 인물들이 개성있고 싱그럽다. 먼 나라 벨기에가 아닌 우리 이웃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습 같다. 그들의 언어 ‘플레미쉬’어의 발음이 정겹다. 특히 노래는 마치 우리나라 트로트처럼 감정이 풍부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