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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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훌륭한 영화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면서 그것이 마치 현실인듯 한 환상을 느끼게하는 독특한  힘이 있습니다.

이 소름끼치게  감탄스러운 영화는  우리를 서부 개척시대 이전,  록키산맥 지대의 광활한  자연으로 데려가 주인공이 겪는 온갖 역경과 고통,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함께 체험하게 합니다.   156분의 상영 시간이 끝나면  마구 휘몰아쳐진 감정을 수습하느라 애를 먹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장엄하고  아름답고 또 사색적입니다.

 

1823년,  캡틴 ‘앤드루 헨리’가 지휘하는 일단의 모피 사냥꾼들은  산속 숙소에서 ‘아리카라’ 원주민들의  기습을 받고 혼비백산하여 후퇴합니다.

아리카라족 추장의 딸이 백인에게 납치되었는데 추장은 딸을 되찾기 위해  모피 사냥꾼들 뒤를 쫒는 것입니다.  많은  동료들이  살해되고 무자비한 인디언들이 추격하는 상황에,  캡틴은  이 지역 지리에 능통한 사냥꾼 ‘휴 글래스’의 조언대로 산을 타고 본부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성질 사납고 탐욕스러운  사냥꾼 ‘존’은 캡틴과 휴의 결정을 못마땅해 합니다.  휴는 ‘포니’ 인디언 아내에게서 아들’호크’를 두었습니다.  휴와 아내, 아들은 포니 인디언  부락에서 평화롭게 살았는데,  백인 군대의 습격으로  아내가 죽고 마을은 불탔습니다.  아들 호크는 자라서 휴를 도와 사냥을 합니다.

홀로 숲속을 거닐던 휴가 거대한  어미 곰의 습격을 받습니다.  순식간에 곰에게 물리고 밟히고 살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고 내동댕이쳐집니다.

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황입니다.  동료들은  몸이 누더기가  된 휴를 들것에 실어 데려갑니다.  하지만 추위와 험한 산길에 휴를 옮기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행군이 늦어지고  힘들어집니다. 존은 계속 불평을 합니다.

호크는  시체처럼 널부러진 아비곁을 떠나지 않고 돌봅니다.  의식이 없는 휴의 귀에 대고 인디언 말로 속삭이며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휴때문에 전체 대원들까지  위험해 지자, 캡틴은  남아서 부상당한 휴를 잘 돌보다가  만약 그가 죽으면  정중히 묻어주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막대한 수고비를  준다는 약속을 하고 대원들과 떠납니다. 돈에 욕심이 난 존과 온순한 청년 ‘짐’이 자원하고 아들 호크와  셋이서 휴의 들것을 메고 갑니다.

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존이 휴를 없애려 하자 호크가 대항합니다. 존은 칼로  호크를 찌르고,  겨우 눈을 뜬 휴는 꼼짝도 못한 채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고통속에서  바라봅니다.  짐이 돌아오자 존은 인디언들이 들이닥친다고  거짓말을 하고,  망설이는 짐을 설득해서 숨이 붙어있는 휴를 그대로 구덩이에 던져넣고 떠납니다.

휴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가까스로 구덩이에서 기어 나옵니다.

추위에 얼어있는 아들의 시체 옆으로 기어가서  얼굴을 맞대고 귀에다 속삭입니다.  아들아, 나는 언제나 너와 같이 있단다.

휴는 짐승의 털가죽을 걸쳐 입고 상처투성이 몸뚱이를 추스려서 아들의 복수를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나무 뿌리를 씹고 강에서 건진 물고기를  날로 먹으며,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걷고 또 걷습니다.  들판에서 죽은 들소 고기를 먹는 포니 인디언 남자를 만나 생고기 한덩이를 얻어 먹고 친해집니다.  ‘수’ 인디언들에게 가족이 몰상당한 남자는 같은 종족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중 입니다.

착한 포니 인디언은  아픈 휴를 자기 말에 태워주고 불을 피워  몸을 덥혀줍니다.  밤새  앓고 나서 기력을 회복한 휴는, 자기를 도와준 포니 인디언이 프랑스 모피 사냥꾼들에 의해  목이 매달린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숙소에  잠입해서 잡혀있던  추장 딸을 구해주고,  말을 훔쳐 달아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집니다.  정신을 차린 휴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 죽은 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밤을 보냅니다.

한편 본부에 도착한 존은 캡틴에게 , 휴가 결국 사망했고 잘 묻어줬다고 보고합니다.  캡틴은 약속한 수고비를 존과 짐에게  건네지만 양심적인 짐은 거절합니다. 휴는 걸어서 본부에 도착합니다.  캡틴은  존의 만행을 알고 분개하지만 존은 금고속 직원들 월급까지 훔쳐서 도망간 뒤입니다.

휴는 응급처치만 받고 캡틴과 존의 뒤를 쫒습니다.  캡틴이 존에게 살해되고  결국 휴는 존과 숙명의 한판을 벌입니다.  사투 끝에 가까스로 휴가 존에게 칼을 꽂기 직전,  휴는 죽은 포니 인디언의  말을 떠올립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신의 손에  달려있다.

휴는 존을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영화 마지막  복수를 마친 휴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됩니다. 그의  눈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관객을 똑바로 쳐다봅니다. 마치 우리에게 묻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깊고 슬프고 공허하고 서늘한 눈입니다.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기가 막힙니다. 배우는 육체와 감정의 노동이 따르는 직업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동물 가죽만 걸친 채 추위에 떨면서 벌판을 기어다니고  걷고,  강물에 빠지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 온몸을 던지는 혹독한 연기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영화 초반 인디언의 기습과  곰의  습격 장면은 가차없이 잔인하고 너무 생생해서 충격적이고 놀랍습니다.  자연의 빛을 그대로 살린 촬영 덕분에 웅장하고 서사적인 화면  속에 실제로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음울하고 부드럽고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음악도  아름답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이 무겁고 길게 남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감독상, 남우주연상, 촬영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