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타이핑의 여왕 (Populair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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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1958년 봄. 프랑스 ‘노르망디’의 시골 마을.  잡화가게 딸, 스물 한살 ‘로즈’는 홀아버지와 살면서 도시로 나가는 꿈을 꾼다. 로즈는 읍내에 나갔다가 비서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인터뷰를 한다.  사장 ‘루이’는 이렇다 할 특기가 없는 로즈를 퇴짜놓다가, 두 손가락 만으로 빠르게 타이핑하는 걸 보고 채용한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한 루이는 로즈를 훈련시켜 그 지역 타이핑 대회에 나가게 할 계획을 세운다. 루이를 부추기는 사람은 그의 옛 애인 마리와 결혼한 미국인 친구 ‘밥’. 루이는 로즈의 승리를 걸고 밥과 내기를 하고, 로즈를 본격적으로 훈련시킨다.

열 손가락을 전부 사용하도록 자판에 색깔을 입혀서 연습시키고, 체력을 위해 매일 달리기, 손가락 힘을 강화시키기 위한 피아노 렛슨까지 받게 한다. 철저한 훈련 덕분에 로즈는 노르망디 지역 타이핑 대회에서 첫 우승을 한다. 루이는 신이나서 전국 대회까지 밀고 나가는데, 로즈는 냉정하고 승부에만 집착하는 루이를 사랑하게 된다.

전국 대회가 열리는 파리. 대형 행사장에는 프랑스 전 지역에서 뽑힌  타이핑 선수들이 타자기를 앞에 두고 앉아 있다. 관중석은 응원 나온 가족과 친구들 구경꾼들로 가득하다. 몇 시간에 걸친 열전 끝에 로즈는 3년 연속 우승한 챔피언을 물리치고 승리한다.  또 세계 타이핑 대회의 프랑스 대표로 뽑힌다.

거대 타자기 회사 ‘포퓔레르’가 그녀의 스폰서로 나선다.  로즈는 프랑스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녀의 이름을 딴 핑크색 ‘포퓔레르’ 타자기가 날개 돋힌 듯 팔린다.

1959년 뉴욕. 세계 타이핑 대회가 열린다. ‘포퓔레르’ 타자기를 가지고 참가한 로즈는 마지막 결선까지 올라간다.  화려한 외향만을 강조한 ‘포퓔레르’ 타자기가 불편했던 로즈는 아버지 가게에서 쓰던 낡은 타자기로 바꾼다. 중간에 실수로 당황할 때, 루이의 고백에 힘을 얻어 혼신의 힘을 다하고 마침내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다.

참신하고 유쾌하고 로맨틱한 프랑스 영화이다. 1950년대, 오피스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여자들에게 타이핑 실력은 필수적 이었다. 영화 내내 이제는 보기도 힘든 구식 타자기들이 등장해서 “탁 탁” 소리를 내며 글자를 찍고, 오른 쪽 끝까지 도달하면 “칭”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 줄을 바꾼다. 종이를 끼고 빼는 동작들 조차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전부 여자들이 참가하는 타이핑 경연 대회는 그 규모와 열기가 인기 스포츠 경기를 참관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세계 대회 결승전을 라디오로 생중계하는 데 인상적이다. 1950년대 프랑스의 풍경이 밝고 화사하게 아름답다. 당시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구형 자동차, 흑백 텔레비젼과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음악들도 섬세하다. 줄담배에  성깔있는 보스 루이와 덤벙대고 용감한 로즈의 조합이 엉뚱하고도 사랑스럽다. 초여름에 어울리는 세련되고 기분좋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