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너와 내’가 없이 괴로움이 해소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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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시카고 포교 40여년…불타사 회주 현성스님

 

현성스님1

현성스님

 

시카고시내 몬트로스길에 위치한 시카고 불타사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는 뜻의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1974년 2월, 1대 지학스님의 집전으로 로건스퀘어 소재 아파트에서 신도 23명과 첫 법회를 시작한 것이 인연이 돼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당시 정기적으로 일요법회를 가지면서 더 넓은 공간을 찾아 두번의 이전을 거쳐 지난 1986년 6월 현재의 위치에 정착했다. 현재 불타사의 법회를 주관하고 있는 11대 회주 현성스님은 지난 2002년 8월 4일 주지로 진산(새 주지가 취임하는 일)한 이후 14년째 불타사를 이끌어오고 있다. 회주란,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이며 하나의 모임을 이끌어가는 큰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로 불타사 정관에는 10년이상 스님으로 지낸 경우 ‘회주’로 추대하고 있다. 현성스님으로부터 불타사와의 인연과 활동, 불교의 역할과 미국내 한국 불교 포교의 과제 등에 대해 들어봤다.

 

■불타사와의 인연, ‘희망이 없으니까 해보자’

지난 2002년 4월, 종교 탐방을 위해 LA에 도착했다. 서부지역에서 한국 불교를 비롯해 베트남, 티벳, 일본 불교 등을 절을 찾아가 순례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차를 구해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던 중 하룻밤을 묵으려고 같은 해 7월 6일 시카고 불타사에 도착했다. 당시 불타사에 신도는 10~15명 정도로 주지스님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불타사를 방문한 나를 보고 법문을 해달라고 부탁 해오길래 일요법회에서 법문을 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법회를 마친 후 불타사에 남아달라는 신도들의 요청으로 시카고에 온지 약 1달 뒤인 8월 4일 주지로 진산하게 됐다.

종교탐방 차 미국 땅을 밟았을 때 서울 수유동에 위치한 화계사에서 교무와 총무를 겸직하고 있었다. 화계사는 큰 절이라 신도들도 많았기 때문에 우편물만 해도 7~8천장씩 다뤄야할 정도였다. 규모도 크고 할일도 많고 그만큼 재미와 보람도 느끼고 있었다. 그에 비해 시카고 불타사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 신도들이 나에게 남아주기를 부탁했을 때 솔직히 말해 고민이 됐다. 내가 불타사에 남기로 한 결정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대로 내가 가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불타사에 남아야 할 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면서 문득 ‘화계사에는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많고 잘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부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래, 이곳은 희망이 없으니까 해보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이 내가 불타사에 남게 된 이유이자 인연의 시작이었다.

누구든지 한가지 일에 혹은 한자리에 진득히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언가 있어야 한다’ 혹은 ‘갖춰져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지금껏 지내보니 당시 그 마음가짐이 현재까지 불타사를 이어오는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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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열린 불타예술제가 끝난 후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통 가치 보존을 위한 불타사의 활동

불타사에 와서 가장 먼저 한인 1세와 2세 및 타인종 신도들의 수행지도, 교육자 양성, 포교 등을 위해 2003년 선학원을 개원해 불교기초교리, 반야심경, 천수경 등을 강의했다. 2006년 선학원을 동방대학교로 개명하고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학교재단(비영리기관)으로 등록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4년에는 불타어린이학교를 개교해 매주 일요일마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사찰이 되도록 노력했고, 이 노력의 결과로 2010년 9월 토요일 ‘불타한국학교’를 개교해 지도교사를 두고 현재 약 40명의 학생들이 한글, 미술, 음악, 무용, 선무도 등을 배우고 있다. 차세대들에게 한국전통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 계승할 수 있도록 지난 2010년 7월 ‘불타예술학교’를 개교했고 정유진 보살(예술감독)의 지도하에 봄 타령, 바라춤, 선녀의 율동 등을 배워 각종 대내외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바라밀타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어린이단원들이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모여 1시간씩 바이올린, 플롯 등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창단 계기는 주로 10~13세 어린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데 그 나이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접하다보면 과도기적인 시기를 거치면서 자신이 관심 밖의 대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 취미 활동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취미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을 확립할 수 있게 되고 성장과정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부모들에게도 존재의 가치를 심어주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불타사에는 각각의 의미를 가진 모임회도 많다. 연령별 모임회로는 50대 이상이 활동하는 불문회(불교문화회), 30대 이상~40대의 바라밀회(지혜의 완성), 20대~30대 선우회(착한친구), 청소년 파라밀타 등이 있고 이밖에 불타예술단, 불타합창단 등이 있다. 주로 불문회에서 어린이들과 한글학교 등 문화 활동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에 대한 불교적 해석

흔히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8만 4천 법문을 했다’는 말이 있다. 병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리듯이 중생의 성격이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8만 4천 중생 개개인에 맞춰 설법을 했다는 얘기다. 세상에 많은 종교중에서도 기독교 성향이 맞는 사람은 기독교를, 천주교 성향이 맞는 사람은 천주교를, 원불교 성향이 맞는 사람은 원불교를, 불교 성향이 맞는 사람은 불교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택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이 세상 사람들 즉, 불교에서 일컫는 중생들이 청렴하고 바른길로 가기만 한다면 어떤 종교를 통해 믿음을 갖든 상관없다. 종교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이름일 뿐이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뿌리는 같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배타적이며 경쟁 차원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다. 그것이 곧 불교에서 희망하는 바로 해석되기도 한다.

불교는 ‘불교’라고 해서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의 반복적인 수행과 노력을 통해 내 마음을 내가 바로 보고, 조정 하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바로보고 행복을 찾기 위해 시카고 불타사에는 극락전, 대웅전, 무설전 3곳의 법당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특히 ‘말이 없는 법당’이라는 뜻의 무설전 한켠에는 포대보살화상을 모시고 있다. 포대보살은 중국 당나라 때 실존 인물로 육신이라 일컫는 6가지 신통이 열려 공덕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불교적인 입장에서는 세상의 평화와 안정을 상징한다. 무설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산, 바다, 바위, 물 등 자연풍경과, 시카고 불타사 일주문, 불타사를 끼고 흐르는 불계천, 설악산 봉정암 사리탑, 오대산 적멸보궁, 가야산 해인사, 한라산 천지연, 금강산 해금강 등이 그려진 벽화가 물 흐르듯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카고불타사는 보통의 절과는 달리 산과 강이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되 눈을 감고 기도를 할 때 내 마음만큼은 고요한 자연과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작가 수잔 한슨이 5개월에 걸쳐 완성한 벽화 작업의 도안은 모두 내가 직접 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불타사와 불교 그리고 신앙생활에 대한 그 모든 이상향을 무설전 벽화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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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불타사 전경.

 

■포교를 위한 노력, 힐링 메디테이션 시작

미국에서의 한국불교 포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구상해왔고 앞으로 개척해야할 과제로서 뚜렷한 설계 없이는 힘든 일이다. 절에 와서 법회를 듣고 구경을 하더라도 한국식 불교가 맞지 않다면 믿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함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적으로 한국 불교를 포교할 수 있도록 ‘나무를 가져다 심는 격’이 아닌 현 시점에서 어떻게, 현지에 맞는 포교 방법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거듭 고민하고 개발해 남은 날 동안 한국 불교 포교에 지속해서 힘쓸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저녁 타인종들이 주를 이루는 ‘힐링 메디테이션’ 참선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힐링 메디테이션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지인들에 맞춰 고안한 호흡을 통한 참선 수행으로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렵기도 한 수행법이다. 부처님께서 비구니들에게 설하신 ‘아나바나사띠’ 수행법으로 참선을 지도하는데 ‘아나바나’라는 뜻은 들숨과 날숨을 의미하고 ‘사띠’는 집중을 의미한다. 즉,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림으로써 다른 생각을 차단시키고 모든 병의 발생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참선을 수행한다. 모든 번뇌와 망상은 바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참선수행 중에는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해 들어오는 생각의 힘을 약하게 하고 집중을 잘되게 해 나를 괴롭히고 기의 흐름을 막는 번뇌와 망상을 정리한다. 반복적인 참선 수행을 통해서 과거의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반성하고 업장을 소멸함으로써 마음이 가벼워지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이렇듯 한인 및 타인종이 힐링 메디테이션을 통해 각자의 고통을 해소해 나감을 느끼고 그 실적이 점차 쌓여진다면 불타사의 참선법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에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나아가 현지에 맞는 포교방법을 구축해 현지 법사(설법하는 승려)를 양성해 포교해 나간다면 미국 전체적으로 한국 불교 방향이 설립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불타사의 방향 ‘괴로움이 해소되는 곳’

‘불타사에 가면 괴로움이 해소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싶다. 절을 찾는 동기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있어야 한다. 각자의 괴로움이 동기가 돼 괴로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에서 스스로의 괴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불타사였으면 하는 것이다. 불교의 핵심교리는 ‘너와 내가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열심히 절에 나오고 수행할지라도 너와 내가 뚜렷이 있는 신도가 있다면 불타사 뿐만 아니라 불교의 희망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너와 내가 없어야 함을 빨리 깨우치고 수행해야한다는 의미다. 너와 내가 없음이란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슬픈 일이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나의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라고 확장해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내가 손가락이 다쳐서 고통을 느낄 때 ‘이 고통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로 즉각 연결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너는 오늘 이상한 옷을 입고 왔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것이며 그곳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시카고 동포들에게도 너와 나의 경계를 없애고 진정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길 강조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할지라도 돈이 많은 것이지 행복한 것은 아니며 행복은 물질과 별개의 문제다. 돈과 계급, 외향적으로 보여지는 것들 역시 그러하다. 겉으로 화려해보이는 것들에서 내 행복을 구하려 하지 말고 나의 마음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불행은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 때문이며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인식이 바로 놓여야 있어야 한다.

다가오는 병신년 새해는 불타사 신도들과 시카고 동포들이 부처의 가르침대로 살며 진정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의미있는 한해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현우정 기자>

 

<현성스님 약력>

-1993년 서울시 수유동 화계사 입산

-1994년 사미계, 1997년 비구계 대한불교 조계종 단일계단에서 수지(경전이나 계율을 받아 항상 잊지 않고 머리에 새김)

-2000년 8월 동국대 불교학과 철학박사 취득, 화계 불교대학 강사 역임

-2002년 8월 4일 불타사 제11대 주지스님으로 취임

-2003년 10월 대한불교 조계종 중덕(불교 법계 중 하나) 법계(불교 수행 계급)를 품서(해당 법계를 공식 인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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