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주관적인 양심과 객관적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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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게 있다. 이것은 보이지가 않는다. 인간이 다 갖고 있다 하여  똑 같은 것은 아니다. 같아지면 좋으련만 많은 경우 달라지게 나타난다. 너와 내것을 꺼내어 비교를 하면 크기도 다르다. 물론 색깔도 다르고, 무게도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부당한 이익을 취 할 때는 은근히 남의 눈에 띠지 않게 감추어서 갖고 있다. 이걸 감추고 사는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함과, 외로움을 부둥켜 안고는 혼자서 괴로워 한다.  괴롭다는 것을 느끼면,  이게 있다는 증거이다. 즉 양심(良心)이다.

지금으로 부터 백년 훨씬 전에 “피노키오“라는 동화가 탄생을 했다. 목재로 만든 꼭두각시 인데,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게 되어 있었다. 여기엔 지미니 크리켓(Jiminy Cricket)이라는 귀뚜라미도 등장을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양심이나, 피노키오가 갖고 있는 양심(Conscience)은 같은거다. 여기서 양심이라 함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인 의식을 말 함이다.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지미니 크리켓이 피노키오의 양심이다. 코가 커지면 나타나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나 인간은 누가 옳은 이야기를 해 줘도 듣지를 않는다. 그 이유는 양심을 이미 어딘가에 감추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또 하나의 나쁜 양심의 소유자이다.

한국 국민으로서 남자면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주관적인 양심을 갖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1만9350명은 정부 수립후 군대를 가지않았다. 이들의 형량을 다 합하면 3만6824년에 이른다고 한국의 대법원 사례집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살아 가는데는 가치규범(價値規範) 이라는게 있다. 이것이 무너지면서 생겨난게 아노미 현상이란거다. 아노미(Anomie)라 함은 사회적인 혼란으로 인하여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 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이 아노미 현상이 점점 더 커저 가고 있음이 우려스러운거다. 사회건 어느 단체건 간에 꼭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에 대법원 판사 출신 두사람이 있었는데, 한 판사는 객관적인 양심에 의거하여 판결을 해야 한다 했다. 또 다른 판사는  주관적인 양심에 의한 판결도 좋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을 비교 해 보면, 객관적인 양심으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명예롭게 은퇴를 했다. 그런데 주관적인 판결도 옳다고 주장을 한 사람은 은퇴 하자 마자 현직에 있을 때, 잘못한 행위를 많이 했기에 감옥에 가 있다.

도덕적의식이 빈약하면 자기의 주관적 양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없는 사람이 많다.  항상 흑백의 대결 구도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의 양심을 올바르게  갖고 있어야 할 책임이 있다. 자기 자신의 양심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 어느 단체에 속하게 되면 많은 다름이 나타난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상식이라던가, 가치체제를 정확히 모르고 , 그저 뭉텅거려서 자기만 옳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을  하면 좋고 나쁜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양심을 갖고 있다면, 생각이라도 해야 할텐데 그게 없는거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우리나라 속담하나가 생각이 난다. “까마귀가 까치를 보고 검다 한다.” 우리 주변엔 까마귀가 얼마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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