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위로는 완벽하다

1007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아테네에서 떠나 고린도에 도착할 때 바울은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습니다. 열심이 복음을 전했지만 거의 열매가 없었던 아테네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사역을 펼치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 겁니다. 주님의 동행을 느끼지 못할 때 사역자는 가장 힘들어 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바울을 위로해주셨습니다.

먼저 주님은 바울을 직접 만나주셨습니다. 아테네 사역으로 인해 영육간에 지쳐있고, 주님의 뜻을 몰라 심히 불안해하고 있는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한 마디에 바울의 마음은 평안해졌을 겁니다. 이어서 주님은 바울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고린도 안에 주님의 백성들, 즉 주님께서 구원하실 백성들이 많으니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하라는 겁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오게 된 것은 주님의 특별한 계획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신 겁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된 바울은 정말 기뻤을 겁니다. 끝으로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누구도 바울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잠시 식었던 전도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부글부글 끓어올랐을 겁니다.

주님의 위로는 말씀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신 말씀을 사역의 현장에서 하나하나 이루시면서 위로해주신 겁니다. 먼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들 부부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고린도까지 온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부부의 직업도 바울처럼 장막 만드는 일이라 이들의 만남은 아주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그리고 대화하는 동안 복음을 위해 금새 의기투합했을 겁니다. 이후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평생 동역자가 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두 사람을 바울의 생명을 위해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은 동역자라고 소개합니다. 이 만남으로 바울은 큰 힘을 얻었을 겁니다.

또한 마게도냐 교회를 통해서 위로해주었습니다. 아테네로 급하게 피하면서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를 아테네에서 다시 만난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 상황이 염려되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곳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목적으로 두 사람을 다시 마게도냐로 보냅니다. 떠났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돌아왔는데, 마게도냐 성도들의 사랑도 담아왔습니다. 그곳 성도들이 후원금을 보낸 겁니다. 바울은 사랑의 후원금에 담긴 주님의 메시지, “내가 널 고린도로 보냈다는 걸 이제 확실히 알겠지.” 하시는 음성을 들었을 겁니다. 힘이 난 바울은 텐트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념합니다.

주님께선 바울의 사역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은 아예 자신의 집을 복음 전하는 장소로 내놓았고, 골수 유대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회당장 그리스보가 그의 온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들도 주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성향 때문입니다. 교통의 요충지라는 잇점 때문에 수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어 도시의 사람들은 돈, 돈, 돈에 정신이 팔려있고, 또한 도덕적으로나 성적으로 아주 문란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의 불을 들고 서자 수다한 고린도인들이 그 빛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한 겁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바울의 복음 사역을 통해 이 말씀을 이루신 겁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바울은 무척 기뻤을 겁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문득 문득 주님의 부재를 느끼고 약해져서 두려워하고 심히 떨 때가 있습니다. 코비드19으로 힘든 지금이 그때일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우리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손을 놓치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5,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