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맞선 ‘진보 아이콘’···미전역 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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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 사망에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 19일 연방 대법원 앞에 한 여성이 추모의 꽃과 사진을 놓고 있다.[로이터]

■ 긴즈버그 대법관 타계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사진) 연방 대법관이 췌장암 합병증으로 지난 18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27년간 연방 대법원에서 약자들을 보호하고 진보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미국 사법 역사상 ‘여성 최초’ 행보를 이어 가며 사법부의 유리 천장 혁파에도 상징적 역할을 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코넬대를 졸업하고 1956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여성 차별이 남아 있던 당시에 육아를 병행하는 이중고 속에서도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뉴욕에서 로펌에 취직한 남편을 따라 명문 컬럼비아 로스쿨로 옮겼으며 탁월한 성적으로 수석 졸업했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럿거스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고,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자유인권협회에서 법무 자문위원을 겸임하며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컬럼비아대 법대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교수였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재직 기간인 1980년 6월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고, 1993년 6월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지명됐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성 평등과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변론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성적 불평등에 관한 판례를 잇따라 변경하면서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법관 임용 후에는 동성결혼 합법화, 버지니아 군사학교의 여성 입학 불허에 대한 위헌 결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등의 판결을 내리면서 소수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워싱턴포스트는 긴즈버그 대법관이 여러 차례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대법원 공개 변론 일정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긴즈버그 대법관의 책임감을 높게 평가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자신이 숨진 후 미국 사법지형이 보수화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영 NPR 방송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을 며칠 앞두고 손녀에게 “나의 가장 강렬한 소망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교체되지 않는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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