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을 문턱을 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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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시카고)

 

가을의 징후가 뚜렷합니다. 소리를 다 쏟아낸 매미들이 도로에 듬성듬성 힘없이 주저앉아있습니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낙엽들이 어느새 작은 규모의 게릴라 군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책로 유일한 사과나무 아랜 다람쥐와 토끼가 먹다만 열매들이 즐비하게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소소한 사건 몇을 경험하며 올가을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사건#1. “전 A 집사의 남편이에요. 제 처 지난 토요일 오후에 하늘 나라에 갔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은혜 받은 것 같아요.” 매일 아침 묵상을 나누던 그룹 창에 며칠 전 뜬 메시지 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 소식을 듣기 열흘 전쯤 A 집사님으로부터 제가 쓴 책을 어떻게 구입하느냐고 묻는 카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집사님 남편께 연락을 드려보니 여행 중 뇌졸증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8일만에 소천하셨다고 합니다. 최근 페북을 통해 본 밝고 건강했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사님으로부터 받았던 늘 같은 내용의 카톡 메시지도 생각났습니다. “매일 보내주시는 묵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잘못했는지 그 방에서 빠져나갔어요. 다시 절 초대해주세요.” 이렇게 말씀 안에서 늘 교제하던 분이었는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갈급해하던 삶이었음을 기억해내고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주님을 만나 평소보다 훨씬 더 밝은 얼굴로 유쾌한 대화 나누고 있을 집사님이 그려지면서.

사건#2. “비 올 확률이 40% 정도니까 괜찮을거야.” 아틀란타의 큰 딸이 오랜만에 집에 온 날 온 가족이 산책을 나섰습니다. 제법 어두운 하늘도 모처럼의 가족 산책 분위기를 방해할 순 없었습니다. 집에서 반 마일 정도 벗어날 때까진 문제 없었습니다.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새 소나기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온이 훨씬 낮은 공중에서 낙하하는 빗줄기는 차가웠습니다. 그러나 곧 뛰는 걸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지쳤고 옷은 이미 다 젖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빗속을 걷는데 마음이 점점 편해졌습니다. 어릴적 추억도 떠올라 마음은 오히려 따스해졌습니다. 걷는 중 엉뚱하게도 말씀 생활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에 푹 젖어들기 전에는 상식과 환경을 앞세워 순종과 타협의 두 길 앞에서 자주 갈등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은혜에 푹 젖게되면 기쁨과 행복과 찬양이 가득한 순종의 길만 보입니다. 차가운 몸 안에 따스한 영혼을 품고 진지하게 신앙을 점검해본 참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사건#3. 저녁 산책길에서 쌍무지개를 보았습니다. 탄성 한 번 외친 후 가족과 나눌 생각으로 사진 몇 장 찍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길을 건너 골프장을 낀 산책로로 향하는데 저 앞쪽에 아이들 몇이 모여있더군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반응은 우리와 비슷했습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대여섯살쯤 된 꼬마들의 행동은 사뭇 달랐습니다. 웃는 입이 전부일 정도의 얼굴 표정을 하고는 깡총깡총 뛰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다가가자 작은 팔을 하늘로 쭉 뻗고는 “무지개 좀 보세요. 쌍동이 무지개예요.”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우리도 봤단다.” 하고 쓰윽 지나치는데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깨우기가 제법 힘들어진 정서를 지니고 살아가는 내 자신을 들키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지으신 세계의 신비함 앞에서 그저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더군요.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