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예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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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예정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를 영원한 현재에서 정하신다는 교리이다. 개혁주의 신학이 예정론을 고수하는 이유는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이어 예정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을 살펴보자. 예정론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로마서 8-11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이 나열되어 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와 유기된 자를 영원한 현재에서 작정하신다. 사람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늘의 천사조차도 예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바울은 설명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딤전 5:21). 하늘에는 선한 천사가 있어 하나님의 명령을 증거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선택함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부를 구원하고 부른 이유는 사람에게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그의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예정에 대해서 가르친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서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기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는 표현을 썼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1-2). 베드로는 나중에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택하신 족속”이라고 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갇혀서 쓴 요한계시록에서 바다짐승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경배를 강요할 때에,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짐승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생기는데, 이들은 사실 창세 전에 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언급한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7-8). 마찬가지로 열 뿔 가진 짐승이 무저갱에서 나올 때 택함을 받지 못한 자(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는 짐승을 보고 놀라워한다고 요한은 전한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계 17:8)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한다. 하나님은 인간이나 피조물을 기준으로 예정하지 않는다. 피조물은 예정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 작정과 예정의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 자신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 기준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는 아무런 자유의지가 없는가? 사람은 프로그램화된 로버트라는 말인가?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우주 속에 사는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또한 자유의지와 책임이 있다고 성경은 설명한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듯한 교리가 성경에는 분명히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호에서 서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