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순서(회개 3)

1417

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왜 인간은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모든 죄의 궁극적 피해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죄에 대한 궁극적 피해자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결국 하나님의 세상을 파괴하는 행위다. 우리의 거짓말에 대한 궁극적 피해자는 하나님이고, 도적 절에 대한 궁극적 피해자도 하나님이며, 전쟁에 대한 피해자도 하나님이고, 탐욕에 대한 피해자도 하나님이며, 미움에 대한 피해자도 하나님이고, 불신앙에 대한 피해자도 하나님이며, 악한 마음에 대한 피해자도 하나님이다. 게다가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희생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

설교자를 통해서 이런 예화를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재판장의 위치에 놓는다. 어느 날 법정에서 재판이 열리는데, 어느 거지가 배가 고파서 빵집에서 빵을 50불어치를 훔쳐 먹다가 잡혀서 판사 앞에 섰다. 판사의 직업은 오로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판사는 법대로 벌금과 함께 빵집 주인에게 200불을 배상하라고 판결한다. 그러나 그 거지는 갚을 능력이 없다. 그러자 자비로운 판사는 법복을 벗고 내려와서 그 거지를 대신해서 벌금과 함께 200불을 대신 갚아 준다. 그러면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다는 예화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예화는 은혜롭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신분과 그의 일에 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판사는 이 거지가 지은 죄에 대한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법정에서 판사는 거지가 지은 죄에 대해서 중립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 이 거지가 지은 죄에 대한 피해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모든 죄에 대한 궁극적 피해자이다. 물론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자이다.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 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개인적으로 고백해야 하며, 그 죄에 대한 용서를 간구해야 한다. 그렇게 간구할 때에 그리고 죄들을 버릴 때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게 된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참다운 고백은 죄들을 버리는 고백이다. 죄를 버릴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는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는 죄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신자는 자유로워지고 있는 중이다. 참된 신자라도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죄를 버린다는 말은 이 땅에서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뜻한다. 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를 범한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크게 뉘우치는 심정을 갖고, 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자세이다. 참 신자는 자기 죄로 인하여 결코 기뻐하거나 무관심하지 않다. 구원의 확신이 죄책을 없애줄 수 없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했던 윤동주 시인의 고백처럼 작은 죄에도 괴로워한다. 이런 신자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