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의미(죽음으로부터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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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로뎀교회 담임

 

구원받은 자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죽음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영적 죽음, (2) 육체의 죽음, (3) 영원한 죽음이다. 첫째, 영적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을 뜻한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피조물로서 피조물은 창조자와 끊임없이 교제해야 한다. 이는 마치 나무와 나뭇가지와의 관계와 같다. 가지는 나무 본체에 붙어 있어야 영양을 공급받아 살 수 있다. 나무에서 끊어지면 죽는다. 타락하기 전 인간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영적인 영양을 공급받고 힘을 공급받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공급받았다. 그런데 인간은 독립을 선언했다. 이는 가지 스스로 나무에서 잘려나간 것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은 원수가 되었다. 하나님에게서 독립한 인간은 영적 공급이 끊기자 메마르기 시작한다. 심리적, 정신적, 이성적, 감성적으로 변질하거나 파괴된다.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항상 불안하며 목마르고 초조하며 허무하다. 분노하고 게으르며 이기적이고 질투한다. 그래서 괴롭고 불행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적인 죽음이다.

둘째 죽음은 육과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이다. 사람은 육과 영혼이 함께 있어야 참 인간, 또는 온전한 인간이다. 타락하기 전, 사람과 하나님이 서로 교제했던 것처럼 육은 영혼과 교제한다. 육은 영혼이 머무를 장소를 제공하고, 영혼은 육체가 지탱하도록 힘을 준다. 그러나 타락 후 이 둘은 원수가 되었다. 육체는 영혼을 부패하게 하고 영혼은 육체가 죄를 범하게 한다. 이 둘은 함께 갈 수 없는 원수가 되었다. 그래서 분리된다. 하지만 함께 있어야 할 것이 분리됨은 고통을 의미한다.

셋째 죽음, 또는 둘째 사망은 죄인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죽음이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성령의 일반적 사역(the common operation of the Holy Spirit)으로 인해 하나님과 어느 정도 교제하게 된다. 극악무도한 죄인도 마찬가지다. 성령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예를 들어 아직 남아있는 양심 또는 국가의 법(형법)–통해 죄인의 악이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어느 정도 억제하신다. 그러나 죄인이 죽으면 음부(지옥)로 내려가게 되는데, 이곳은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곳이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완전히 끊긴다. 죄인은 이곳에서 부활의 때를 기다린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부활하고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의인은 영생을 받고 악인은 영벌을 받게 되어 둘째 사망, 즉 영원한 죽음을 맞는다. 아마도 이때 부활한 몸이 다시 분리되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은 이 모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교제가 성령의 거듭나게 하신 사역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 끊어졌던 가지가 예수님의 피를 접착제로 해서 나무의 본체에 다시 붙기 시작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영양을, 주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공급받는다. 그동안 느꼈던 불안, 초조, 허무, 분노, 질투심이 감소하거나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이 찾아온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발견한다. 하지만 곧바로 본체와 완벽하게 하나 되지는 못한다. 접착제가 완전히 굳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의 접착제는 완전한 접착제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분명 완전히 붙게 할 것이다.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구원받은 자도 육과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은 일반적으로–에녹과 엘리야 같은 예외는 있다–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구원받은 자의 죽음은 그렇지 못한 자의 죽음과 비교할 때 그 형태는 비슷하나 질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불의한 자의 죽음은 하나님 은혜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불의한 자에게는 이 세상이 유일한 천국이다. 그러나 의로운 자, 즉 구원받은 자의 죽음은 생명의 부활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죽음 그 자체는 여전히 죄의 결과로 인한 불행한 일이지만 악을 선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죽음도 선하게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신자의 영혼을 낙원으로 옮겨서 즉시 거룩하게 하신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게 해서 재창조의 날을 기다린다. 신자에게 있어서 육체적 죽음은 완전히 거룩한 영혼이 되게 하는 방편이요 낙원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다.

구원받은 자는 영원한 죽음(둘째 사망)을 겪지 않는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육체가 구원받는다. 흙으로 돌아갔던 육체는 낙원에 있는 영혼과 만나서 생명으로 부활한다. 이 육체는 영광스러운 육체, 다시 썩지 않을 육체, 완전한 육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육체이다. 이 단계를 신학적으로 영화라고 한다. 이렇게 구원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