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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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구원의 확신이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의 확실성과 구원의 확신 간의 구분이 필요하다. 구원의 확실성이란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구원은 확실히 보장된다는 뜻이다. 은혜에서 절대로 타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the certainty of salvation”이라고 한다. 반면 구원의 확신, 영어로는 “the assurance of salvation”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 또는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따라서 정말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1항을 보자. “위선자나 그밖에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상태에 있는 줄로 알고서 거짓된 소망과 육적인 억측으로 헛되게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사라질 것이다.” 대표적으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았다. 그들은 자기 영혼이 구원받아서 잘 되어 가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자신을 속였다.

이렇게 거짓된 구원의 확신이 있지만, 참된 구원의 확신도 있다. “그러나 주 예수를 참으로 믿고, 신실한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며 그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을 따라서 힘써 행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 영광의 소망 중에서 즐거워할 수가 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8장 1항). 성경은 올바른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참으로 구원받지 못했지만,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처럼, 참으로 구원받고 동시에 참다운 구원의 확신으로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참 구원의 확신과 거짓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첫째, 참 확신은 겸손을 낳지만, 거짓 확신은 영적 교만을 낳는다. 둘째, 참 확신은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더욱 노력하게 하지만, 거짓 확신은 영적 게으름과 자만에 빠지게 한다. 셋째, 참 확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거짓 확신은 현재의 영적 상태에 만족하게 한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진위를 판가름해 줄 수 있는 기준은 확신의 강도가 아니다. 보통, 누군가가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소?”라고 물을 때, “예 있습니다”라고 확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여기지 않는가? 이런 자세는 구원파가 말하는 구원의 확신이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기준은 확신의 강도가 아니라 그 성격이다. 넷째, 참 확신은 하나님 말씀의 확실성을 믿음으로 생긴다. 그러나 거짓 확신은 인간의 말에 그 확신을 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예수 믿게 된 극적인 상황에 대해 간증을 한다. 그때, 어떤 권위 있는 목회자가 그 간증을 다 듣고 나서 “당신은 그때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말로 인해 안심하고 그 말을 근거로 구원의 확신을 두는 것이 거짓 확신이다. 다섯째, 참된 확신은 성화를 근거로 생긴다.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가? 죄로부터 멀어지지 위해서, 부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고군분투하는가?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얼마나 맺고 있는가? 참된 확신은 이런 질문에 그 근거를 두지만, 거짓 확신은 그렇지 않다. 여섯째, 참된 확신은 하나님 말씀에 의한 성령의 증거로 생기나, 거짓 확신은 성경 말씀과는 상관없는 거짓 영에 의해 생긴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사사로운 계시를 주지 않는다. 성령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