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구원의 확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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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참된 신자는 구원의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그렇다. 참된 신자는 구원의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구원받았다고 볼 수 없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은 사실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7:21-23에서 하신 말씀을 주목하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많은 사람이 구원의 확신으로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섰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대답하신다. 또한, 마태복음 25:31-46에서는 양과 염소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가 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으로 예수님 앞에 섰고, 오히려 구원받은 자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결국, 구원은 구원의 확신에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으로 구원받지 않는다.그런데 안타깝게도 구원의 확신으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구원파나 극단적 세대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들은 죄에 대한 깊은 회개 없이 구원의 확신과 구원 자체를 혼동한다. 이들은 요한복음 3:16에 기록된 “누구든지”라는 단어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믿고, 자신의 구세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는 표식으로 손을 높이 들 때, 마치 그 즉시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구원과 구원의 확신을 혼동하는 행위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믿음을 혼동하는 것이다. 이는 복음을 믿는 것과 내가 진정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복음을 영접했다는 믿음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문제의 핵심과 역사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지도 않은 얼마나 확신 넘치게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은 두 가지 다른 주제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았음에도 그것을 그의 마음에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의 구원은 안전하며 확실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 안전을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의 구원은 확실하지만, 그의 구원의 확신은 의심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환자가 외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가정해 보면, 그가 수술에 동의할 때, 그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를 신뢰하고 동의한다. 의사는 매우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수술을 실행한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환자는 회복 중에 있다. 몇 시간 후 환자는 마취에서 깨어난다. 그의 두뇌가 또렷해지면 그는 모든 수술 과정이 다 잘되었는지 묻는다. 의사가 와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환자를 안심시킨다. 환자는 의사의 숙달된 수술로 안전하게 생명을 보존했다. 그러나 이것이 환자 자신의 의식 속에 완전한 확신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이 확신은 적절한 증거들이 나타날 때 차후에 발생한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이 이와 같다. 구원의 증거들이 성경적으로 나타날 때 이 증거에 따라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