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성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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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성찬이 성찬을 집행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영적 상태에 따라서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찬자가 어떠한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성찬의 효력은 발생한다. “비록 무지하며 악한 사람들이 이 성례에서 그 외적 재료들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것들에 의해 표시되는 것을 받지 못하며, 그들의 합당치 않은 참여로 말미암아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어 그들 자신의 영원한 형벌에 나아간다. 그러므로 모든 무지하며 불경한 사람들은 주와 교제를 누리기 부적당하므로 주의 상에 합당치 않으며, 그들이 그런 상태에 머무는 한 이 거룩한 신비들에 참여하거나 그것들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9장 8항).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자기를 잘 분별한 후에 참여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고전 11:27-28).

그렇다면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개방 성찬식이 있다. 개방성찬식은 순전히 수찬자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긴다. 수찬자 스스로 자신이 성찬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받는다. 그런데 개방성찬식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 개혁주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방편 세 가지는 모두 동일하게 전달되지 않고, 그 범위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은혜의 방편 중에서 말씀의 경우, 이를 받는 대상은 모든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만 전파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파한다. 그러나 성례는 다르다. 성례 중에서 세례는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베풀어졌다. 성찬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성찬을 집행하지 않고, 오직 열두 제자에게만 베푸셨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합당한 지식을 갖추고, 예수님의 제자임을 고백하며, 또한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보였다. 게다가 초대교회에서는 먼저 말씀으로 가르치고, 세례를 받게 하며, 주의 일에 충실한 증거를 보여 주는 사람에게만 성찬을 베풀었다. 오히려 초대교회의 성찬식은 폐쇄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폐쇄 성찬식은 그 교회의 세례 받은 교인에게만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환경에서 적합할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무리가 있다. 참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교회 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마도 가장 적합한 것은 제한적 성찬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제한적 성찬식은 자기 교회 회원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 회원도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데, 무분별하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만약 그 사람이 진리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고백하며, 그의 계명들에 순종하여 행하는 증거가 있으면 수찬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무지하고 불경한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죄를 범하는 과오를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