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세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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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개혁주의는 세례의 방법으로 반드시 물에 잠기게 하는 침례를 행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세례를 받는 사람을 물속에 잠기게 할 필요가 없고, 그 사람 머리 위에 물을 붓거나 뿌려서 시행하는 것이 합당하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8장 3항). 어떤 기독교 교파는 반드시 침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세례를 뜻하는 헬라어 “밥티조”가 “물에 잠근다”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밥티조”가 “물에 잠근다”는 뜻이 있지만, 반드시 이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0:2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모습을 두고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묘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 바다에 잠겨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마른 땅을 건너갔고 이 사실을 세례받았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밥티조”라는 단어가 침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히브리서 9:10에 의할 때, 구약의 의식법에는 “여러 가지 씻는 것”이 있다. 여러 가지 씻는 것은 구체적으로 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리는 것, 피를 온 백성에 뿌리는 것, 피를 장막과 거룩한 그릇에 뿌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를 통해 구약에서 씻는 행위는 침수로 하지 않고 뿌리는 것으로 행했지만 이런 행위는 세례를 뜻하는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는 장면에서도 세례가 침수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2:3은 성령이 임해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였다”고 증거한다. 베드로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5-18).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부음을 받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례는 침수만을 의미하지 않다. 제1세기에 세례가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었는지 “밥티조”라는 단어만을 가지고 알 수 없다. 물에 잠기었는지 아니면 위에서 부었는지… 중요한 것은 침례이냐, 물을 뿌리는 것이냐, 아니면 물을 붓는 것이냐가 아니라, 세례를 받음으로 죄를 씻어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이다.

한편, 세례의 대상에 대해 살펴보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8장 4항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앙과 순종을 실제로 고백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양친이 다 믿거나 어느 한 편만 믿는 집의 유아들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침례교에서는 유아 세례를 실행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유아는 세례가 요구하는 것을 경험하거나 이행할 능력이 없고, 둘째로 성경에 유아세례를 베푼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의 능력이나 세례의 행위가 아닌, 전적으로 성령의 중생하는 능력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언어로 된 말씀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도 성령의 중생하는 역사가 있으면 구원받는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나 지적 장애자 또는 오감을 통해서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는 사람도 하나님의 의지가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언어를 통한 말씀을 깨닫고 입으로 고백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세례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개혁주의의 입장이다. 세례를 베푸는 행위는 구원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은혜의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은혜의 방편은 세 가지가 있다. 말씀, 기도, 성례다. 두 번째 이유, 즉 성경에는 유아세례의 예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성경에는 여자에게 성찬 예식을 집행하라는 특정한 명령이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이 성찬 예식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유아가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고 해서 유아세례가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유아 세례가 배제되었다는 기록도 역시 없다. 유아 세례는 성경 전체에서 흐르는 논리를 살펴볼 때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족장 시대에 은혜 언약의 표를 신자들의 자녀에게도 베풀 것을 명령하신다. 세례의 전신인 할례는 성인뿐만 아니라 믿는 자의 자손에게도 베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