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유효한 부르심 3

918

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회심으로 반응을 하지만 다른 사람은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온 인류 중에서 일부 사람만이 복음을 듣게 되는데, 이들 중에서도 또 소수의 사람만이 복음에 의해 감동되어 구원을 받는다. 택함을 받은 자만이 복음에 믿음으로 응답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들을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듭나서 새로운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한 것이다. 이런 내면적 능력은 택함 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이 능력으로 하나님께 나아온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모든 공로는 하나님께 돌아간다.

그렇다면 복음을 듣고도 거절하는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그들을 거듭나게 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원망해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말씀의 전도에 의하여 동등하게 부르심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진실하고 성실한 부르심이다. 하나님은 이들도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진심으로 바라신다. 물론 이들이 복음을 거절할 줄을 아신다. 하지만 이들이 거절하고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기뻐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회개하기를 바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마음은 진실한 것이다. 자식이 나쁜 길로 갈 것을 100% 확신한 부모가, 자식이 개과천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꾸짖고 훈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할 사람도 복음의 능력을 어느 정도는 경험할 수 있다. 씨 뿌리는 자와 흙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어떤 사람은 잠깐은 믿고 순종하는 것 같이 보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심까지 보이지만, 나중에는 모든 흥미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하나님 나라에 대적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한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 6:5, 6). “사람들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게서 벗어났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어서 정복을 당하면, 그런 사람들의 형편은 마지막에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들이 의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벧후 2:20-22).

같이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배교할 것인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은 존재한다. 이런 사람의 치명적 결함은 그들이 결코 참되고 진실하게 그리스도에게 나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자신을 속이고 있다. 진실한 회개와 믿음이 이들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이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이들이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택함을 받은 사람의 경우 구원의 공로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는 것처럼, 복음을 듣고도 멸망하는 모든 사람의 경우는 자신에게 있다.

요한복음 5:40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도다.” 물론 그들이 본래 전적으로 부패한 까닭에 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줄 의무는 없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것에 대하여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