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인간의 타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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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다.”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골로새서 3:9).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분명 새로운 피조물이다.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완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예수님이 다시오실 때에 완전한 사람이 되겠지만 현재는 완전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요일 1:8-10). 거듭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부패한 본성이 남아 있다. 이러한 본성의 부패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받고 억제되고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중생한 사람 안에도 남아 있다. 중생한 사람은 모든 부패와 죄가 자기에게는 전혀 없다고 믿는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오히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고자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다.죄에 대하여 끊임없이 싸운다.

어떤 사람은 나의 옛 본성으로 말미암아 내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옛사람, 즉 옛 본성이기 때문에 내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사람은 자신이 완전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가장 추악한 죄악을 인정한다. 그런데 죄에 대한 책임은 부정한다. 모든 범죄 행위를 옛 본성 탓으로 돌리고, 새 본성의 행위들만 자기 것으로 삼는다.그래서 죄악에 대해서 참회하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 이런 자세를 갖는 대표적인 이단이 바로 구원파이다. 이들이 사람들을 유혹할 때 자주 하는 질문은 “당신은 의인입니까. 아니면 죄인입니까” 이다. 만약 상대방이 머뭇거리다가 “죄인인 것 같다”고 대답하면 곧바로“당신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사해지고 의롭게 되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본질적으로 의인이 되었다고 믿는다. 죄를 짓는 것은 새로운 본성이 아니라 옛 본성이니까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죄에 대해서 자유로워지라고 한다.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진짜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파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기쁨이 있다. 행복하다. 그런데 어떤 행복인가? 진실을 보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봄으로 생긴 기쁨이요 행복이다. 회칠한 무덤과 같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롬 7:17 같은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7). 또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3).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바울은 자신의 죄악 된 상태에 대한 책임을 졌다. 바울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있노라”라고 했고, 롬 7:18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안다고 했다. 바울은 자기 죄악을 마치 자신이 짓지 않은 것처럼 “옛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 옛 본성의 찌꺼기들이 자기 안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것들에서 자기 죄악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 찌꺼기들에 대하여 싸우되 그것들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고 분명히 지적한다.

현실은 이렇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부패가 지배하나,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법이 다스린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경우는 죄가 왕 노릇 하나, 거듭난 사람의 경우는 비록 죄가 살아남아 있기는 하지만 왕 노릇 하지는 않는다. 어느 쪽이 강한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