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혁주의 신앙: 하나님의 계시 7

961

정성국 목사(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논문심사위원)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성경해석에만 국한된 특별한 법칙은 아니다. 이 법칙은 상식에 해당한다. 언어에 관해 생각해 보자. 어떤 말이나 글의 작은 단위로 단어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언어학에서는 이보다 더 세분화 할 수 있지만, 편의를 위해서 단어라고 생각하자. “학교,” “교회,” “집” 같은 명사나 아니면 “간다,” “온다” 등의 동사가 있다.

이 단어들이 모여있는 것을 구(phrase)라고 하고 구가 모여서 주어 동사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절(clause)라고 한다. 절이 모여서 조금 더 큰 단위를 이루면 문장(Sentence)이 되고 문장이 모여서 단락(paragraph)을 이루며 단락이 모이면 전체 글이 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작은 단위의 의미는 더욱 더 큰 단위 속에서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이원리는 상식에 속한다.

예를 들어, “나는 매 주일 정오까지 내가 10년동안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내 가족과 함께 ○○교회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간다”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이 문장은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문장에 있는 한 단어의 의미는 문장을 벗어나서 해석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간다”는 동사를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이 단순히 “간다”고 말할 때와 앞에 문장을 다 말하고 나서 “간다”라고 말할 때는 분명 다르다. 같은 단어이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 단순히 “간다”라고 할 때는, 수많은 의미를 가진다. “학교에 간다. 교회에 간다. 산에 간다. 정처 없이 간다.” 하지만 이 사람이 “간다”고 할 때는 “. . . 매 주일 정오까지 . . . 예배드리기 위해서 간다”는 뜻이다. 동사뿐만 아니라 명사나 형용사도 다 마찬가지이다. 문장 속에서 그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한 문장의 해석도 그 문장을 둘러싸고 있는 단락에서 해석해야 하고 단락은 글 전체에서 해석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곡해하게 된다. 시편 14:1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는 구절이 있다. 이것만 떼어놓고 보면 성경은 하나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편 14:1 전체를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이다.

그러니까 성경이든 어떤 글이든 그 뜻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문맥에서 해석해야 하고 그 문맥은 글 전체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성경이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성경 한 구절만을 가지고 어떤 원리나 신학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 요절도 성경 전체가 말하는 조직신학을 이해하면서 외워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