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을 주러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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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주님께선 열 두 제자를 둘씩 묶어 전도를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이 처음으로 주님 없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들을 보내며 마음이 쓰이셨는지, 주님은 길 떠나는 제자들에게 격려와 위로와 경계의 말씀을 한 보따리 안겨주셨습니다. 말씀 중 한 마디가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이 땅에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검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검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장 말씀을 보면 천군과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러 오신 것 맞습니다. 십자가 희생을 통해, 수직의 화평(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화평)과 수평의 화평(사람들 간의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은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2장에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피를 통해 연결된 화평의 공동체, 가족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이 땅에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주님을 믿는 순간 영적 전쟁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서, 하나님과 맞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고 왜곡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애쓰는 사탄의 세력과 평생 싸우게 되었다는 걸 ‘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가르쳐주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이 영적 전쟁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렵고 치열한가를 보여주시려고, 전쟁 중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사례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물론 해결책도 주셨습니다.

먼저 악한 영의 세력이 사랑하는 가족을 이용해서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사탄은 먼저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먹게 합니다. 아담은 하와가 건네 준 선악과를 아무 주저없이 먹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들었습니다. 만약 따먹게 되면 정녕 죽게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사랑하는 아내 하와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이 세상 그 무엇 보다도, 심지어 가족 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다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참제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때의 제자들은 십자가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오싹오싹했을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죄인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끔찍한 모습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바루스라는 로마의 군대 장관은 로마에 저항하는 유대인 2,000여명을 잡아 몽땅 십자가 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 십자가를 갈릴리 지역 길가에 일렬로 죽 세워 두었다고 하니, 길 양편에 아무리 촘촘하게 세웠다 해도 그 길이가 2km는 충분히 되었을 겁니다. 따라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건 죽음을 뜻하는 겁니다. 영적 전쟁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순교의 정신을 요구하는 거친 전쟁터인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자기 생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을 만나면 주님을 택하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주님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예수님 믿고 제자가 되었다면 이 세상의 어떤 것 보다도, 물론 자기 식구나 자신의 생명도 포함해서,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 주님 사랑을 실천함으로 매일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승전가를 부르며 주님을 좇는 참제자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