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난은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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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1992년 주재원 발령을 받아 시카고에 왔을 때, 한 선배가 나침반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차 안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면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겁니다. GPS가 없던 그 시절,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앙 생활에도 나침반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예수님 비유의 탕자는 아버지 앞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합니다. 자기에게 물려줄 유산을 지금 달라는 겁니다. 유대 사회에서 살아 계신 아버지 앞에서 유산을 이야기는 하는 것은 아주 큰 불효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아들에게 재산을 내어 줍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나 먼 나라로 갑니다. 그곳에서 탕자는 쾌락의 늪에 빠져 물려받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큰 흉년까지 닥쳐 탕자의 형편은 순식간에 끝 모를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목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봤지만 돼지치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겐 부정한 짐승이라 평소 먹기는 커녕 만지지도 않는 돼지였지만, 탕자는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근은 점점 더 심해졌고, 탕자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얻어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탕자는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만이 이 고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고, 다시 아버지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칠흑과 같은 고난에 휩싸이고 나서야 탕자는 사랑과 소망의 빛이 되시는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고난은 탕자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준 겁니다.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조국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에 가고 싶지 않아서 도망간 겁니다. 요나는 니느웨와 정반대 쪽에 있는 다시스를 향했습니다. 배에 오르자 긴장이 풀린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가 깊은 잠에 빠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광풍이 일어나 배가 파선 직전까지 갔고, 이 모든 일이 자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린 요나는 선장에게 자기를 바다로 던지라고 말합니다. 광풍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선원들은 마지못해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그때 신비한 물고기가 나타나 요나를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는 하나님을 향해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이 깊은 바다 가운데로 던지셨습니다. 전 지금 산의 뿌리가 있는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고, 바다물은 제 몸과 영혼까지 휩싸고 있습니다. 이 끔찍한 고난 속에서 제 영혼은 두려움과 절망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하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계신 성전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 이 죄인 이제야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부르짖어 회개합니다.” 요나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 주셨고 다시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가던 요나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놓은 것은 바로 고난이라는 나침반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고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시는 겁니다. 우리 모두 오늘의 교훈을 마음판에 깊이 새겨 두길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을 만날 때마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를 살피고, 자신의 삶을 다시 하나님께로 정조준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탕자와 선지자 요나처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다시 넘치게 체험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