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난은 담금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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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시편119편의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노래합니다. 고난은 어떤 유익을 낳길래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을까요?

금속을 불에 뜨겁게 달구었다가 물이나 기름을 사용해서 급속하게 냉각시키는 과정을 담금질이라고 부릅니다. 담금질을 하는 이유는 금속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섭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신앙을 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영적 담금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사용하시는 도구가 바로 고난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시기해서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피해, 부모를 모시고 증조할머니 룻의 고향인 모압 땅으로 갑니다. 사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모압은 피해 있기 딱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보내 다윗에게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 피해 도망 나온 장소로 다시 가라시는 겁니다. 이해하기 힘든 명령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그때부터 다윗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사울의 추적을 피하면서 양식과 잠잘 곳을 구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10여년을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요? 사무엘상 24장과 26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24장과 26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습니다. 사울만 죽으면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를 끝내고,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하나님 뜻대로 통치할 수 있게 됩니다. 다윗과 다윗을 따르던 자들과 사울의 통치 하에 신음하던 백성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하나님 섭리에 맡깁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동안, 다윗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 겁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다윗은, 양이 목자를 따르듯, 자신의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만 고정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선 그런 다윗을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매일 공급해 주셨고, 또한 생명도 지켜 주셨습니다. 도망자로서의 삶은 분명 고난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체험하는 신비의 시간이기도 했던 겁니다. 이 기간 다윗은 하나님의 성품-전지하심, 전능하심, 신실하심, 사랑-들 하나하나를 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차기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난의 시간은 다윗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100% 순종하는 삶으로 바꿔 놓은 겁니다. 하나님께선 다윗의 영성을 담금질하기 위해 그를 유대 땅, 고난의 풀무 속으로 밀어 넣으셨던 겁니다.

고린도후서 12장 말씀을 보면, 바울이 육신의 가시를 두고 하나님께 3번이나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인내심이 강한 인물입니다. 그런 바울이 ‘가시’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주님께 3번이나 기도했다는 사실을 볼 때, 정말 고통스러운 질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맡겨 주신 소명에 생명을 걸고 헌신하는 바울이 3번이나 기도했는데 침묵하신 겁니다. 대신 큰 영적 진리를 주셨습니다. “너의 약함을 통해 내 능력이 온전해진다.” 자신이 육신의 질병도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고 의지하게 되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난 후부터,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오히려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육신의 가시라는 고난을 통해 바울의 영성은 한단계 더 upgrade된 겁니다.

고난의 의미를 알면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주실 하나님의 선물을 기대하며 인내합니다. 우리 모두 긍정적으로 고난을 대하고 소망 중에 인내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 담금질인 고난을 통과할 때마다 우리 모두의 신앙이 훌쩍 성숙하고 성장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