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통을 대하는 자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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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평생 나환자들만을 위해 헌신했던 의사 폴 브랜드. 그는 그의 책 [고통이라는 선물]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 당하는 나환자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깨달은 그의 경험을 통해 고통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임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통의 주제를 시작하며 그가 의과 대학생 시절 인체를 해부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9년 9월, 영국이 독일과 2차대전 중 그는 의과대학 2학년이었습니다. 당시 의과대학생들은 웨일스의 카디프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중년의 웨일스 사람을 해부하게 됩니다. 폴은 그곳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그 사람의 뇌를 해부하게 됩니다. 눈썹 사이의 가운뎃점에서 부터 절개를 시작하여 피부를 벗겨내고 지방질의 조직, 그리고 안면 근육을 걷어내면 하얀색 가느다란 신경들이 나타나고, 후신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새카드(saccade)라는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을 말하는 용어와 같은 설명을 곁들이며 마치 눈 앞에서 해부가 진행되는 것 처럼 세밀하고 자세하게 해부의 과정을 묘사합니다. 마침내 두개골을 열기 위해 구멍을 뚫고 톱질을 하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상아색 상자… 뇌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신경외과의사가 두개골을 연 다음에는 더 이상 마취를 하지 않고서도 마음대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해석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 정작 그 세상과는 단절된 채 외로이 고립된 상태에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고통과 고난의 문제는 결코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 우리의 두뇌에서 그것을 느끼고 판단하는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떠 하느냐에 따라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도 고난과 고통은 마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고난과 고통이 밀려올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맏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2-3)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시험’은 우리가 이 죄악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당하는 모든 시험과 고난을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우리가 이 죄악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이러한 시험들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말하기를 이러한 시험이 올 때에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그 다음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시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요 힘입니다. 지금 내 인생길에 밀어 닥치는 고난과 고통을 그저 시험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을 ‘믿음의 시련’으로 바꿀 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대하는 자세라고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시련’이라고 하는 단어의 의미는 금을 제련하는 것을 의미하는 ‘도키미온’(δοκιμιον)이라는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험들을 우리의 모난 품성들을 제거하고 더욱 정결케 하는 믿음의 제련과정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험이 닥칠 때 그 시험과 고난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을 믿음을 단련하는 시련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 시험을 통하여 우리가 단련되고 제련되어져서 온전함을 이룰 수 있음을 인하여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시험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나병은 그냥 살이 썩는 것이 아닙니다. 나병이 걸리면 피부 가까이에 있는 신경들이 죽으면서 상처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럼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상처를 방치하게 되면서 궤양이 되고 썩어지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경험하는 고난과 고통은 나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고 단련하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시험에 대한 그의 권면을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시험을 인하여 우리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단이 원하는 것이요 사단이 즐기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험을 통하여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대하는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