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여,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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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마가복음 11장 15-19절을 보면, 성전 안에서 제사를 위한 제물을 매매하고, 이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대출받고 대출업자는 이자를 받는 식의 유대교의 세속화된 종교 형식을 예수는 직접 눈으로 보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15절 후반절에는 “(그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라고 기록할 정도로 예수의 의분은 매우 강했다. 그러면서 예수는 비판을 받은 사람들에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으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7절)고 선포한다.

단순히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은 당시 유대교가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모습 대신에 마음에 우러나오는 기도하는 자의 제사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는 이사야 56장 7절의 표현을 인용해 성전이 기도하는 집으로써 진실함과 진정성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예수의 선포는 단순한 종교적 ‘진정성’을 넘은 대사회적 선포이다.

예수의 시대에 가장 큰 가치를 차지하는 것은 로마제국의 황제, 곧 황제의 명령과 그에 준하는 로마법이었다. 더불어 이스라엘 땅에서는 정통 유대교를 유지시키는 수 백 가지의 율법들이 당시 피라미드 사회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여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황제의 명령과 유대교의 율법은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성전 안에서 제물을 사고 팔고, 그 매매를 도와 주기 위해 돈을 꾸어 주는 식의 거래가 유대교의 율법에 문제가 되지 않고 로마법이 허용해 준다면, 전혀 마음에 꺼리낌이 없는 행위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의 명령과 로마법, 유대교의 율법이 절대적인 기준처럼 세상에 통용되어 있을지라도, 예수는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과 온 만물에 공평하고 정의롭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편향적이고 계급적인 명령과 율법이 기준이 되는 세상의 흐름에 함께 휩쓸려 가고자 했던 타락한 유대교에 예수는 상과 의자를 뒤집어 엎는 모습으로 강력한 하나님의 경고를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외친 것이 바로 “이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라는 선언이다. 여기서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 신실성과 진정성을 표현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기도는 로마 황제의 명령과 로마법, 유대교의 율법에 대항해 참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하나님의 질서이자 방향이다. 예수가 선포한 기도는 “기도했습니다. 응답해 주십시오”라는 식의 기복적인 장치로서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세우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자 믿음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는 바로 그 기도가 사방에서 읊조려지고 외쳐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가복음 11장 17절의 말씀대로, 교회(성전)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예수는 선포한다. 로마황제의 명령과 로마법, 그리고 유대교의 율법으로 곳곳에 고통과 아픔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교회는 기도를 하는 곳으로 세상에 소망을 주고 희망의 뿌리가 되는 곳이 되어야 함을 예수는 깨닫게 해 주고 있다. 교회는 유일하게 기도의 능력을 세상에 실현화 시킬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여! 우리는 지금 만민이 기도하는 곳으로 세상을 바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기도는 한 사람의 편의와 복락을 위한 무속종교적 도구로 교회 안에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는 세상을 바꿀 유일한 하나님 나라의 힘이다. 왜 그 능력을 우리 스스로 무당과 하급종교, 이단의 유치하고 가벼우며 헛된 틀 속에 가두어 놓으려고 하는가? 우리는 로마황제의 명령과 수많은 유대교의 율법을 대항해 하나님 나라의 법으로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킬 ‘기도의 능력’을 받은 교회가 아닌가?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라. 지금 이 시대에 로마와 로마황제, 그리고 유대교의 율법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대항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도를 선포하는 교회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