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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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 목사(레익뷰언약교회 담임/시카고)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 1:26-27)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것처럼 그를 믿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보내심을 받은 세례요한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만 전하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은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라 그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라는 겸손한 대답을 하였을 때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은 그러면 무슨 권한으로 세례를 베푸느냐고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요한은 그들의 질문을 다시 한번 예수님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았는데 그는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 뿐이지만 잠시 후 그가 신발끈을 풀어드리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위대한 분이 오실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메마른 광야로 뒤덮인 유대지역은 먼지가 많아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손과 발을 씻어야 했는데 손님의 발을 씻기는 일은 가장 신분이 낮은 하인들만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천한 일이었던지 당시 랍비들의 격언 가운데 ‘제자들은 스승을 모든 면에서 섬겨야 하지만 그의 신발끈을 풀고 발을 씻기는 것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얼마나 높고 존귀한 분으로 여겼던지 자신은 감히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여러 랍비 중의 한 분이 아니시라 온 세상을 창조하신 왕중의 왕이시면서도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후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다시 앉아 온 세상을 심판하실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직시하였던 것입니다. 이 영광의 예수님을 바라 보았을 때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영광의 자태가 너무나도 크고 존귀하여 상대적으로 자신은 그 앞에서 이 세상의 가장 낮고 천한 종보다 더 작은 존재임을 깨닫고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는 자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녀도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영광에 도취되어 내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섬기는 종인 것으로 착각하고 급기야는 예수님을 나의 신발끈을 풀어 주기 위해 있는 하인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 자신이 너무 커져서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완전히 실패한 삶을 살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만함을 주 앞에 간절히 회개하는 시간을 갖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시 바라봅시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면서도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영광의 주님,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돌아가신 후 삼일만에 우리를의롭게 하시기 위해 부활하셔서 이제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계신 영광의 성자 하나님, 이 크고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발 앞에 엎드려 겸손히 그를 경배하며 오직 그리스도만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