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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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안디옥 사람들은 교회 성도들이 자기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문헌들을 보면 교회 성도들의 기이한 행동들, 즉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곳곳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중 하나만 나눌까 합니다. 

로마 시대의 도시 생활은 상류층 또는 귀족들에게나 화려했지 대부분의 서민들은 형편없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6년전 초대 교회들의 흔적들을 견학하기 위해 터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에 도착했을 땐 흥분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이름을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사역 공간으로 사용한 두란노 서원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골격이 잘 보전되어 있는 도서관 건물을 보고 안내원에게 혹시 이곳이 두란노 서원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안내원은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을 가르키며 그곳이 서민들이 살던 곳인데 그 안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기록을 보면 고대 로마 도시에서 서민들이 몰려 살던 곳은 오늘날 개발 도상국의 빈민가와 비슷했습니다. 인술라라고 부르는 주거용 건물은 다층의 다세대 주택이었습니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인구가 폭증하자 주거의 수요를 감당하려고 기존의 목조 건물 위에 한 층 한 층 쌓을 수 있을 때까지 덧쌓아 올린겁니다. 그러니 그런 건물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가 없는 겁니다. 미로와 같은 길은 그 폭이 아주 좁았고, 양쪽으로 꽉 들어선 건물들 때문에 낮에도 어두컴컴했습니다. 물은 지저분한 공동 우물에서 길어다 먹어야했고, 하수 시설도 없어서 오물은 공동 쓰레기 장에 갖다 버려야했지만, 게으르고 예의 없는 도시인들은 오물을 자기 발코니에서 길거리로 쏟아붓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거리마다 지저분한 냄새로 가득했고 위생은 엉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몰려있고 위생이 엉망이다보니 전염병이 창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한 번은 로마 시에서만 하루에 5,000여명이 생명을 잃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살던 집과 심지어 죽어가는 가족과 친구들까지 버리고 정신없이 도시를 빠져나갔습니다. 병자들을 돌보아야 할 의사들도 달아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성도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아있는 기록들은 교인들이 도시에 남아서 한 일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병든 자를 찾아가 정성껏 섬겼고 그들이 낫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돌보아주었다.” “보살피던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정성스럽게 펴주었고, 그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시신을 안아주었으며, 시신을 씻기고 입혀서 장례를 준비했다.” “간호하고 치료해주던 사람들은 회복되었으나, 정작 자신은 그 병에 전염되어 죽은 성도들도 많았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교인들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면서 로마 신을 섬기는 갈라디아의 한 제사장에게 이렇게 불평했다고 합니다. “불경한 갈릴리 사람들은 자기네 가난한 자들 뿐 아니라 우리네 가난한 자들까지 돌본다. 그런데 우리네 가난한 자들은 우리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교회 성도들은 손수 팔을 걷어부치고 기쁨으로 감당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그렇게 살아간 교회 성도들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은 그래서 성도들은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서 그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살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도 이 명예로운 호칭, ‘그리스도인’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