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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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이웃 교회 담임/미육군 채플린)

 

누군가의 손을 굳게 붙잡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참으로 안타까운 일도 많지 않을 듯합니다. 최근 감기로 인해 고생하면서 주변에서 만나는 분들조차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일예배에 나가 말씀을 전한후에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할 수 없는 것이 이렇게 큰 고통스러움인줄 몰랐습니다. 맘으론 힘차게 손을 붙잡고, 뜨겁게 포웅이라도 해드려야 할 분들이 앞에 서있는데 말입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손을 꼭 붙잡아 주는 것처럼 소중한 일들이 인생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아합니다. 왜냐면 이같은 작은 몸짓으로 표현된 친절과 사랑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오래 간직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제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 귀한 분이 있습니다. 제가 막 미군에 군목으로 입대하여 신입 채플린이 되었을 때, 아무 것도 모르고 어슬픈 저를 늘 격려해 주던 사단 군목였던 프레스톤 대령입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저를 향해 베어허그를 하며 열정적으로 저의 손을 붙잡아 주던 가슴이 따뜻한 분이 었습니다. 힘들고 지친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 줄 때, 이것이 그를 외로움과 절망으로부터 일으켜 세워 주는 일이 될 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이 누군가의 삶의 기억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귀한 감동으로 남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바쁜 갈릴리 사역을 하시다가 베드로의 장모집에 들어간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누워있던 베드로 장모의 손을 붙잡아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는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막1:31). 이같은 예수님의 자상하고 친절한 모습은 한없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사실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누군가의 손을 굳게 붙잡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던 예수님의 손은 평생 목수일로인해 거칠고 투박한 손이 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마 그 손엔 일하다가 다친 깊게 패인 상처의 흔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주님의 손은 주변에 힘든 어부일을 하는 동네의 많은 사람들의 거친손과 다를바 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와 똑같은 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손은 흰두교에서 섬기는 많은 팔과 손들이 붙은 그들의 신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대조적인 것을 발견합니다. 흰두교의 신은 그의 몸에 많은 손들을 가지고, 그 손끝마다 각종 무기를 들고있어서, 그들은 어떤 형편이나 환경에서도 이 신들의 수많은 손들이 보호해줄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손은 우리와 똑같이 상처나고 거칠어진 손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부활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났던 예수님이 도마에게 내 보이셨던 손도 우뢰와 번개를 붙잡은 엄청난 손이 아닌, 그의 상처입은 못자국난 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예수님의 손은 우리 인간의 고난과 질고를 체험하고 이해한 손이 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손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기까지 자신을 송두리체 내어준 그 중심에 구멍이 뚫린 못자국 난 손이 었습니다. 그 사랑의 못자국난 손을 붙잡을 때, 우리는 인생의 어떤 실패와 절망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듯 사랑과 희생이 담긴 손길엔 힘이 있습니다. 수년전에 이미 돌아가셨지만 병상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께서 멀리 타국에서 달려온 다 큰 아들의 얼굴을 두손으로 수없이 매 만지던 기억이 자꾸만 눈에 떠오릅니다. 지금은 따뜻한 어머니의 손끝을 붙잡을 순 없지만, 다 큰 자식을 사랑으로 어루만지시던 가냛은 어머니의 손길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으로 수많은 외로운 이들의 손을 붙잡아 주었듯, 우리도 아직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붙잡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는한 기꺼이 우리의 손을 내밀어 상처난 영혼을 보듬고 일으켜주는 용기를 가져야하겠습니다.(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