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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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사람들은 여행을 위해 비행기의 이륙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만나기 위해 약속된 시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다림은 우리의 일상 속에 늘 있는 일입니다.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삼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분명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일 텐데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흘러 가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시간의 개념을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시간을 사람들의 약속으로 구분하여 만들어 놓은 시계를 기준으로 이야기 합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약속에 의해 합의된 측정 가능한 시간입니다. 측정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무게나 거리와 같은 물리적 단위와 마찬가지로 측정 단위로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계에 의해 표현된 시간을 우리는 객관적 시간(objective time) 또는 실제적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객관적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경험하면서 살게 됩니다. 어떨 때는 시간이 훌쩍 지나는 것처럼 느꼈다가도 또 어떨 때는 시간이 지루하도록 흘러가지 않는 것 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은 객관적 시간과는 달리 마음과 생각에 따라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런 마음의 시간을 주관적 시간(subjective time) 또는 심리적 시간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사람들이 기다리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때 심리적으로 느끼는 주관적 시간은 객관적 시간에 비해 길게 느껴지게 됩니다.

어느 날 만났던 한 어르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고 하늘로 가신 지가 20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안 오고 계십니다. 2000년 넘도록 안 오시는 거 보면 우리 주님 다시 오신다는 거… 이거 정말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로 올리 우신 이, 올라가시는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주어진 지 200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2000년의 시간은 객관적 시간으로도 긴 시간이었는데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들의 마음속에 그 시간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되었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성취될 것을 알면서도 주님을 기다리는 이 마음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집니다. 왜? 그 기다림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같은 기다림이라도 비행기의 시간과 같이 그 시간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 기다림과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기약 없는 기다림은 느껴지는 주관적 시간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기다림이 지루해 지고 힘들어 지는 것은 그 기다림의 끝이 언제인지 알지 못할 때 그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때를 알지 못합니다(마 24:36). 그래서 주님께서는 항상 깨어 있으라(마 25:1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삶, 언제 오실 지 모르는 분을 기다리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삶이 이제는 지루하고 초조하여 ‘정말 오시려나?’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 도 있을 법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다림의 이유가 분명할 때 아무리 긴 기다림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대를 품을 수 없는 기다림은 절망입니다. 언제까지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커다란 고통입니다. 이때 우리의 주관적 시간은 영겁만큼이나 길어지고 ‘이 또한 다 지나 간다’는 격언의 그 시간조차 원망스러워 집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결과가 온다는 확신이 있을 때는 그 결과를 향한 기다림을 얼마든지 유예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결코 잊지 아니하시는 분께서 친히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기다림 끝에 만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돌이켜보건대 그 시간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을 기꺼이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기다린 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보상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계 22:7,12,20) 주님의 재림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기다림에 지쳐갈 때 주님의 다시 오심이 분명한 약속임을 믿는 믿음으로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어 내심으로 저 하늘 천국에 다 들어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