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을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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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혜 문인김성혜

 

“성혜 언니, 늘 걷는 길이지만 새삼 아름답다 싶지 않아요? 푸르던 잎사귀들이 어느새 이렇게 화려한 색깔로 변했을까요? 그리고는 미련도 없이 툭툭 떨어져 발밑에 수북수북 싸이고요.” 숙이 언니의 말이다.

숲길을 걷는 발자국 식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오질 못해 오늘은 언니와 나, 둘이다. 식구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걷는 재미가 따로 있다. 용감무쌍한 대한민국의 아줌마 부대가 왁자지껄 떠들며, 깔깔대고 웃으며, 맨주먹 휘둘러 스트레스 물리쳐가며 걷노라면 무적함대(?)라도 된 듯 기분이 들뜬다. 절로 힘이 난다. 하지만 오늘처럼 내 숨소리까지 들릴 둣 조용한 길을 둘이서 걷자니 기분이 새로워진다. 자연을 좀 더 느낀다 해야 할까?

“어제는 아무도 없어 저 혼자 걸었어요. 그래선지 아니면 철이 철이라 그런지 느낌이 달라지데요. 보세요 언니. 세상을 뒤덮고 있던 잎새들이 우수수 떨어져 수북이 싸이니까 하늘이 훤히 보이잖아요? 여름엔 초록으로 꽉 차서 어디를 보나 초록 세상이었죠. 그렇던 잎새들이 떨어지니까 그 자리가 하나씩 비워지고 그 대신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해요. 전엔 가려서 보이지 않던 세상요.” 언니가 파랗게 뚫린 하늘을 가리킨다. 여긴 우거진 수목으로 유명하다. 이리 오는 길조차도 나무들이 만든 터널 때문에 대낮에도 “헤드라이트 켜야 하는 구역,”이라 쓰여 있을 정도다. 언니 말이 맞다. 가려있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보이지 않던 강이 보이고, 강 건너 동네도 보여요. 며칠 전만 해도 강물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잎이 무성했던 여름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강이잖아요? 여름 내 강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채 걸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눈이 떠 진 기분이예요.”

숙이 언니는 내가 자신보다 물리학적으로 나이가 더 먹었다고 날 언니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숙이씨를 언니라 부른다. 거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언니는 누구에게나 친언니 못지않게, 아니 친언니 이상으로 무슨 궂은일이던지 달려가서 돌봐주기 때문이다. 홀로 사는 노인이 몸이 아프다 하면 어느새 달려가 언니 노릇 해 주고, 마음 아프다는 동생 있으면 뛰어가 눈물 닦아준다. 차편이 없어 절절매는 사람 있다면 하던 일 다 내려놓고 달려가 운전사 노릇도 해 준다. 언니 차의 마일리지는 울 동네서 최고일 거다. 그렇다고 언니가 놀고 있는 한가한 사람도 아니다. 누구 못지않게 바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런다. 그런 언니 보고 있노라면 구경하는 내가 숨차다.

“언니, 하나씩 자릴 비워 주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배웠어요. 아! 그렇구나. 마음을 비워라, 비워라, 하는 말이 바로 이 소리였구나! 여름내 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마음이 꽉 차서 하늘이 어딘지, 강이 어딘지, 물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지요. 땅바닥하고 푸른 잎사귀만 보며 걸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하늘도 보이고, 강도 보이고, 강 건너도 보여요. 바위 틈새 구비 돌아 흐르는 강물 소리도 들리고요.”

언니는 다시 한 번 둘러본다.

“잎들이 다 떨어지는 겨울이 곧 되겠지요. 그럼 더 빈 마음이 될 거예요. 그때는 세상이 훨씬 더 훤히 보이지 않겠어요?”

숙이 언니 눈이 반짝하며 웃는다.

“사람 마음도 욕심, 집착, 고집, 교만, 그런 것 하나씩 떨구어 버리면 세상이 보이는 것 아닐까요? 깨끗이 비우면 비울수록 더 잘 보이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겨울이 기다려져요. 하나님께서 너무도 잘 만드셨구나 감탄하게 돼고요. 다 버리고 빈 마음이었다가 새 봄이 오면 새 희망, 새 사랑, 새 믿음으로 채워 갈 수 있게 말이죠.”

숙이 언니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본다. 내 맘을 꽉 채우고 있던 잎새들도 후두둑 소리 내려한다. 우리 사는 세상에 언니 같은 사람 있어 참 다행이다. 고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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