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나다 (I Am Who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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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우리가 Korean-American으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때로 혼란을 가진다. 미국에 평생을 살아도 미국인이라 할 수도 없고 한국에 가면 외모는 같은데 한국인이 아닌 것을 발견한다. 인종 혐오 범죄로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여기가 내 나라인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고민하며 나는 코리언도 아메리칸도 아닌 중간의 점에 불과하다며 자기가 없이 살다가도 내가 누구라는 이름이 있기에 그 이름에 따라 살려고도 한다.

하나님이 자기 사람으로 선택한 아브라함의 후손도 같은 운명을 가진다. 아브라함의 증손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로 가는 대상들에게 종으로 팔리고 그는 파라오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나라를 7년 기근에서 구해 내는 위대한 총리가 되고 자기 가족을 이집트의 비옥한 땅으로 이주시켰다. 세월이 지나며 이들이 번성하자 이집트인은 이들을 히브리인 (건너온 자, 유랑민)이라 부르며 두려워하여 노예로 삼고 고역을 시키면서도 남자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산파에게 명령하다가 남자가 태어나면 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석달을 부모와 같이 있다가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던짐을 받았다. 왕의 공주가 발견하여 모세(건져 내다)라 이름하고 왕궁에서 양육하였으나 그는 여전히 히브리인이었다. 그가 장성하여 자기 백성이 이집트인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자 이집트인을 죽임으로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으로 도망하여 양치기가 되었다.

그는 누구인가? 이집트인 히브리인, 아니면 미디안인가? 하루는 양을 치는 그 앞에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 없어지지 않는 광경이 나타나 가까이 갔더니 불꽃 속에서 모세야 모세야! 이름을 부른다. 그는 그의 조상의 하나님이라며 노예로 신음하는 그 백성을 구하여 내라고 한다. 잊혀졌던 모세라는 이름 값을 하라는 것인가? 모세는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집트의 많은 신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그를 보내는 그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 곧 ‘나는 나다’라 한다. 이상한 이름이다. ‘나는 나다’는 히브리어 YHWH 네 글자로 발음은 야훼로 생각되나 자식이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듯이 히브리인은 그를 Adonai (나의 주 LORD)라 부르고 그 모음을 붙여 여호와라 하였다. ‘나는 나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백성을 건져내라고 함은 그가 이집트의 신들을 정복하고 자기 백성을 억압에서 해방하여 히브리인에서 ‘나는 나다’의 백성이라는 정체를 주겠다는 것으로 구약에 6828회(하나님은 2838회)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이다

‘나는 나다’ 는 무엇을 말하나? 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살아 있어 모든 존재를 있게 하고 없게 하는 자, 눈에 보이지 않으나 만나고 알 수 있고 모든 것을 알고 행하는 능력이 있고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분이다. 그는 시간의 시작과 끝이 되나 동시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불변하는 분으로 참으로 신비하다. 그가 자기 백성을 해방하여 인도하고 다스리며 히브리를 이스라엘(하나님이 다스리다)로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

‘나는 나다’ 하나님이 온 백성을 죄와 죽음에서 건지기 위하여 예수 (구원자)를 보내셨다. 예수는 자신이 아브라함 이전부터 있는 ‘나는 나다’로 생명 빛 진리 길 목자 떡과 생수라 하며 누구든지 그를 믿고 받아드리면 언제나 그와 함께하여 ‘나는 나다’ 의 사람으로 살게 하신다. 나는 누구인가? 예수 안에서 확실하게 ‘나는 나다’하며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