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삶의 노선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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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교착점 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만으로도 이스라엘은 과거로부터 매우 복잡한 국제정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일수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에서 일어난 강국들의 침략과 그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의 16대 왕인 므나헴이 왕위에 있을 때 북방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15대 왕인 살룸을 죽이고 쿠테타를 일으켜 왕이 된 므나헴은 (B.C. 752년 부터 10년간 재위)은 앗시리아가 쳐들어오자 이를 기회로 쿠테타의 혼란을 불식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은 1,000달란트의 조공을 바치는 정책으로 앗시리아의 침략을 막아냅니다(왕하 15:19-20).  그 뒤 므나헴의 아들로서 17대 왕이었던 브가히야를 죽이고 쿠테타로 왕이 된 베가 왕 때에도 앗시리아의 침략이 있었는데(왕하 15:29) 이때 베가 왕은 선대 왕과는 달리 아람과 동맹을 맺고 남방 유다에게도 연합할 것을 제안하여 세 나라가 힘을 합해 앗시리아를 대적하자고 제안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방 유다는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이를 기분 나쁘게 여긴 베가 왕은 아람과 연합하여 남방 유다를 먼저 침략하게 됩니다(사 7:5-6). 이때 남방 유다의 왕은 아하스였는데, 아하스는 예상치 못한 북방 이스라엘의 도발 앞에서 안절 부절하고 있었습니다. 앗시리아의 견제를 받고 있던 북방 이스라엘이 갑자기 침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뿐 만 아니라 이를 저지할 힘도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아하스에게 보내어 북방 이스라엘과 아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사 7:1-11)고 권면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외교 노선을 맞추라는 선지자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사 7:12) 그리고는 그는 오히려 엉뚱하게도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왕상 15:7)

아하스는 당대의 강국이었던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매우 굴욕적인 외교를 자처 합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낮추어 표현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성전과 왕궁의 곳간에 있는 은, 금을 내어다가 앗시리아 왕에게 예물을 보내기까지 합니다(왕하 16:8). 이에 앗시리아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고 아람 왕 르신을 죽여 남방 유다의 청을 들어주게 됩니다(왕하 16:7-9). 남방 유다는 당장 눈앞에 있던 아람과 북방 이스라엘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러나 앗시리아와는 벗어날 수 없는 종속의 관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아하스의 친 앗시리아 정책은 나라를 더 궁핍하게 만들어 버렸고 후에는 에돔과 블레셋이 남방 유다를 침공하게 되었을 때 앗시리아에게 이를 도와 달라고 했지만 앗시리아는 오히려 남방 유다를 침략하게 됩니다(대하 28:20-21).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에게 외교의 노선을 맞추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조언을 무시했던 남방 유다의 왕 아하스는 결국 죽는 날까지 강대국 앗시리아에게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나 역경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하는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가져 가기 보다 먼저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을 의지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삶의 노선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상의 강한 자들, 세상의 재력 있는 자들, 세상의 권세 있는 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들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상에 강한 자들이 아니라 우주의 권능자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재력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세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온 우주의 통치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노선을 어디에 맞추어져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