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버지 18

1498

ha-jae-200x200

하재관 노인건강센터 사무장(시카고)

 

야하다 제철소에서 돈도 많이 벌고, 경리자격증도 받은 태수는 歸鄕을 결심한다. 문자 그대로 錦衣還鄕이다. 영주읍에 가면 초등학교 동창생인 김창덕 이라는 처녀를 만나보고 싶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동생 천기를 통해 그녀의 의중을 알아보았다. 결혼하겠다는 意思였다. 창덕의 집은 부자로서 마을에서는 농사도, 장사도 크게 해 동리에서는 알아주는 부자다. 태수는 가난하고 부모도 없다는 이유 때문에 김우일(처녀 아버지) 장로로 부터 거절당하고, 반면 같은 동리의 부호 강석초의 아들 강문구를 사위로 삼겠다고 계획했다.

강문구는 태수의 內明學校 동창생으로 잘 아는 사이다. 강문구는 “태수는 나의 동기동창으로 창덕씨와 둘이서 혼인하자는 약속이 있었는데 내가 어찌 그 규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義理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고 단호히 거절 했고, 창덕이도 “태수 씨를 마음에 두었으니 그리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양가에서는 문구와 창덕을 방에 가두어 놓고 서로 허락하라고 협박했다. 상항이 긴박해지자 창덕이는 경성에 다니러 간 태수에게 “일이 심상치 않게 벌어지고 있으니 속히 손을 써주세요!”라고 쪽지를 보냈다. 태수는 창덕의 편지도 받았으니 좀 더 강하게 추진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경성에서도 좋다는 가구점에 들러 의장(衣欌)을 사서 철도편으로 보냈다. 수일 후 창덕의 아버지 김우일 장로로부터 “딸을 주기는 하겠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좀 더 기다려야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태수는 즉시 중매를 해준 강병주 목사님을 찾아가 울분을 터트렸다. “좋다고 해 놓고 젊은이들의 장래를 이렇게 망칠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자, 강병주 목사님은 “응, 화가 날만도 하지만, 나 같으면 더러 워서도 차 버리겠네! 여자가 한번 마음먹었으면 初志一貫(초지일관)해야지, 부모의 결정에 따라 이리 저리 쏠리는 여자면 그만 두는 게 좋겠네. 내가 좋은 곳으로 중매해 줄 테니 그리로 하게나! 질그릇 깨고 놋동이 얻는 격이 될 것이니….”하시면서 김상준(金相濬-대한성결교회 창시자)목사님의 딸 김성복(金聖福) 규수를 소개했다. “김성복은 인물 잘났고 똑똑하며, 그의 아버지 김상준 목사는 유명한 학자요, 부흥목사로 동양3국에 제일가는 일류목사요, 가문으로는 의성 김씨로 양반의 종손 되는 집안이니 김우일 집에다 비할 수 없으며 규수를 보더라도 거기에 비할 정도가 아니라”고 성복이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태수가 복을 받으려고 그렇게 된 것이니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내 말을 믿게나” 권하시기에 情理로 봐서 마다할 수 없었다. 강병주 목사님은 태수의 모교 내명학교 교장 선생님이며 유명한 목사로서 태수를 지극히 사랑하였기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태수는 앞으로 장인이 될지도 모를 김상준 목사님을 뵈러 개성 고려정 160번지를 찾았다. “이리 오너라!” 문 앞에서 불렀다. 아무도 없고 처녀하나가 나와 힐긋 보고 대답도 없이 들어갔다. 예쁘진 않아도 똑똑해 보였다. 조금 후 흰 Y-shirt을 입은 분이 나왔다. 이 분이 김상준 목사님이시다. “강병주 목사님의 소개를 받고 온 하태수입니다”며 인사를 했다.

반가워하시며 방으로 안내했다. 집안 내력과 부모님,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태수의 人生事에 대하여 얘기를 들으시곤 “고생이 많았군!” 하시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고 물으셨다. “낙후된 농촌을 개발하여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농사도 많이 지어봤고, 양잠업에도 일가견이 있고, 가내 축산에도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경리일도 할 수 있어 잘사는 농촌을 만드는데는 제격입니다.” 답을 했다. 김 목사님은 많은 감명을 받으셨는지 “가서 기다리면 열흘 안으로 답을 하겠네” 약속하셨다. 성복이를 불러 의사를 타진하니 별로라는 거다. 김 목사님은 “그 사람은 인격자야”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더 말을 잇지 않으셨다. 보지도 못하고 시집 장가드는 시절에 태수와 성복이는 相面이라도 했으니 多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