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버지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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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관
시카고노인건강센터 사무장

 

昌信敎會를 5년 섬기신 후 아버지는 현저동에 있는 서울형무소 목사(chaplain)로 가셨다. 일반목회와는 양상이 달랐다. 설교보다는 수감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상담하는 일이 거의 전부였다. 수감자들의 대부분이 가족과 부모님들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았고, 어떤 出所者는 고향에 갈 차비가 없어 再犯을 하게 되고, 당장 출소해도 생활 할 수 없어 감옥에 남아있겠다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감옥에서 기술을 좀 더 배워 나가겠다는 囚人도 있었다. 이상은 사상범이 아닌 케이스다. 사상범은 빨간 물이 진한 사람들로서 제법 토론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아 하 목사님의 “예수를 믿으십시오!” 따위는 웃음거리고, 오히려 하 목사님도 공산주의를 공부해 보시라는 태도였다.

하루는 32세의 절도범이 목사님을 찾아와 자신의 범죄동기와 가정형편을 얘기하면서 창신동 돌산(채석장)에 사는 아내를 심방해 달라고 부탁했다. 직장도 없이 하루벌이로 살다가 먹을 것이 없어 싸전(곡물점)에서 쌀을 훔치다 잡혀 들어온 경범이다. 하 목사님은 찐 고구마 몇 개를 사들고 주소도 없는 그 집을 향하셨다. 한참 헤매다 찾은 곳은 산언덕 큰 바위 밑이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가 보니 ‘하루살이’ 피난생활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가마니 바닥, 두터운 상자로 막은 벽, 허름한 담요, 사과상자에 놓인 사발, 수저, 등잔…..

목사님은 찐 고구마를 내 놓으시고 기도하자고 권했다. 아이 엄마는 “없는 돈에 왜 사오셨어요!” 사양하는 말을 하더니 6, 7세 된 딸에게 하나 집어 주고 다른 하나는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자기의 형편없는 모습이 초라해 보였던지 종종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했다.목사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미안스러워 하셨다. 그 부인에게 “창신동 교회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다니면서 예수를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하시고 “죄짐 맡은 우리구주” 찬송을 찾아 부르신 후 기도로 끝내셨다.

다음 날 서울형무소 교화과로 출근하신 목사님은 남편되는 박수환(在所者)을 불러 어제 방문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해주었다. 가족은 모두 잘 있으며 갓난아이도 우렁차게 울더라고, 그리고 창신동 교회에서 가족을 돕기로 했다고 말하자 박수환은 사자가 포효하듯  목을 놓고 울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이름보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더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가족은 힘 있다:Family is powerful! 하 목사님은 두 아이를 대리고 살아가는 아내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 박수환의 등을 쓰다주면서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

박수환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敎化課에서 일하면서 하 목사님을 도왔다. 그의 진솔하고 거듭난 모습은 많은 재소자들에게 좋은 감동을 주었고 자신도 크게 변했다. 하 목사님은 그를 模範囚로 추천하여 감형 받아 일찍 출옥하게 하였는데, 문제는 나가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이는 당사자의 고민뿐만이 아니라 하 목사님의 고민이기도 했다

며칠 후 하 목사님은 인천에 있는 대한유리공사(유리생산 및 판매)의 상무로 계신 朴鶴田 목사님을 찾았다. 서로 면식이 있는 터라 면회가 쉽게 이루어졌고 박수환의 취직문제도 논의가 되었는데 문제는 보증을 누가 하느냐? 절도범은 훔치는 것이 직업인데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다는 보증을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 하 목사님은 “제가 보증서죠!” 거침없이 대답했다. 하 목사님의 처지를 잘 알고 계신 박 목사님은 가볍게 웃으시면서 “뭘 보고요?” “제가 집도 방문해서 가족도 만나고 했는데요, 먹고 살만하면 훌륭한 시민이 될 사람입니다” 하 목사님의 대답에 ‘한번 믿어 보자!’는 생각이 있으셨는지 박학전 목사님은 혼쾌히 취직을 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