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버지 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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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버지> 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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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관 시카고노인건강센터 사무장

 

아버지는 서울형무소에서 부천형무소 刑牧으로 옮기셨다. 부천형무소는 넓은 평야에 터를 잡고 있어 囚人들은 밭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오래된 官舍修理에 배치됐다. 감방에서 지내는 것 보다는 밖으로 나가 이야기도하고 재수 좋으면 看守에게서 담배도 얻어 피울 수 있기에 모두 差出되기를 원했다. 대부분 절도범, 사기범, 공금횡령 범으로서 형량이 가벼운 수인들이고 강한 형사범 즉 살인범, 성폭력범, 사상범 등은 노동program에서 제외됐다.

8월 하순 말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라 저녁이면 모기장을 치고 문을 다 열어놓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가족을 떠나 혼자 관사에서 자취하시며 계신 때라 주방기구, 취침도구, 옷가지 모두가 간소했다. 옷을 홀딱 벗고 모기장 속에 들어간 아버지는 그래도 더우신지 부채질을 하시다 잠이 드셨다. 곤히 잠들었을 때 갑자기 눈 위로 불빛이 지나가기에 벌떡 일어나 “거 누구요?” 물었다. 도둑은 “밤손님이시다. 찍소리 말고 엎드려!”외치며 전짓불을 얼굴정면에 들이댔다. 도둑은 아버지 혼자계신 것을 알고 여유 있게  행동했다. 부엌과 방을 돌아본 도둑은 실망했던지 퉁명스레 “목사가 거지보다 못 사니 이게 말이 되냐!…쯔쯔쯔.” 아버지는 이 말이 당신에게 묻는 질문인줄 아시고 “미안합니다. 나 혼자 자취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용서(?)를 구하는 듯, 코미디 중의 코미디를 연출하고 계시는 줄도 모르시고 꼬박꼬박 대꾸를 하셨다. 도둑은 갖고 갈 시계나 라디오나 옷이라도 반반한 것이 있기를 바랐던 모양, 계속 욕을 섞어 빈정대면서 아버지를 나무랬다. 도둑이 벽에 걸어 놓은 10년이나 된 단벌 신사복을 만지작거리자 아버지는 깜짝 놀라 애원하듯 “여보시오 그것은 제발 놔두시오. 설교할 때 입어야 되니 그것만은 봐주시오!” 부탁하셨다. 도둑은 사정을 봐줄 의사가 있어서보다 그 양복의 환산가치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냥 만져보고는 “목사가 옷이라도 반반해야지….” 투덜댔다. 그래도 도둑이 사정을 봐주는 것으로 미루어 이야기를 해볼 만한 상대라고 느끼셨는지…. 아버지는 “여보 선생! 선생은 예수를 믿소?” 물었다. 도둑은 “내가 예수를 믿으면 도둑질을 하겠소? 물을 것을 물어야지, 유치원생만도 못하구먼…..쯔쯔쯔” 내 뱉었다. 그리고는 쪽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으시고 나가 쪽마루 한쪽에 앉으려고 하자 도둑은 아무 말 없이 옆으로 비켜 주는 관용을 베풀었다. 도둑은 한숨을 푹- 내 쉬면서 “돈 있으면 좀 꾸어주쇼! 내 고향에 내려가면 곧 부쳐 줄 것이니……..”  아버지는 누구든지 돈 꾸어달라고 하면 늘 난감해 하셨다. 어- 어- 하시더니 “내일 출근하면 알아 볼 태니…….. 얼마나 필요한 거요?”물으셨다. “한 6, 7천환 필요해요.”-(당시 $환율이 400:1이었다.) 도둑은 이때부터 하 목사님에게 존댓말을 쓰기시작하드니….  자기는 절도범 이였다느니, 부모님과 가족을 합해서 여덟 식구라느니,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라느니….. 며칠 전 관사 수리하러왔었다느니….줄줄 댔다. 다음날 목사님은 형무소소장을 찾아가 7천환을 얻어주었다. 도둑은 예수를 믿으라는 말보다 ‘7천환’이 더 가슴에 와 닿았던지 일어서서 고맙다고 절까지 했다.  “여보 선생, 고향에 가거든 예배당에 나가시오. 예수님이 도와주실 게요. 내가 헛소리 하는 것이 아니요” 하자   “고향에 내려가면 열심히 살아야죠. 목사님!” 어제의 도둑이 이제부터는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결의를 하는 듯 가는 뒷모습이 든든해 보였다.